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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에 대한 전용 호칭으로서 경성은 1910년 8월 22∼29일 강제병합조치 후 9월 30일에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 발표에서 한성부를 경성부로 고친 것에서 시작하며, 이후 서울은 ‘경성’, ‘게이조’라고 흔하게 불린다”고 설명했다. 또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고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해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역사적으로 경성이란 호칭이 조선 중기 실록에 서울의 도성 안을 가리키는 뜻으로 조금 등장하지만, 시종 한성이 서울의 한자 표기 공식 명칭이었다”며 “강제병합 후 일제는 동경, 경도에 이은 일제 ‘천황’의 직예지 조선의 수도라는 뜻으로 경성으로 바꿨고, 이는 우리 16세기 기록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공식명칭 경성이 대부분 사용됐지만, 한국인들은 한성, 한양, 서울 등을 혼용한 흔적이 여럿 있다.
한편 1920년에는 모더니즘 문화 관련 잡지 ‘서울’이 창간되는가 하면, 당시 대중문화 중심 인물들이 서울의 치안담당자에게 보낸 공개탄원서로 유명한 ‘서울에 딴스홀(댄스홀)을 허하라’에서도 ‘서울’을 썼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