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8일 서울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를 깜짝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아베 총리가 담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정식 합의문도 없었고, 양국 외교장관이 발표문을 읽었을 뿐이었다. 더구나 아베 총리의 직접적인 사과도 담기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실망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지 않았다.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정부끼리 합의했다는 일방적 ‘통보’만 있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합의로 앓던 이를 빼낸 것처럼 시원해했다. 이로써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게’ 해결했다고 국제사회에 홍보했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 1주년을 앞둔 요즘 합의 백지화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 한국의 유력 정치인들이 잇달아 박근혜정부의 잘못된 외교 사례로 위안부 합의를 거론하면서 무효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상규 도쿄특파원 |
용서와 화해는 피해자의 몫이다. 정부든 시민단체든 주변에서 아무리 ‘충분하다’고 떠들어대도 소용없다. 피해자가 받아들여야 비로소 끝이 난다. 그들이 원한 것은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였다.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동반자 관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미·중의 패권 다툼이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에 한·일은 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 손을 맞잡아야 할 소중한 우방인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협력이 절실해진 시기의 한·일이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핵심은 위안부 문제다.
아베 총리는 26∼27일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한다. 1941년 일본이 기습공격을 했던 진주만을 찾아가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당시 미군 피해자들과 만나는 장면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미·일 간 과거사 문제의 화해와 매듭’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다.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해서도 그와 똑같이 행동하면 된다. 미국에 할 수 있다면, 한국에도 할 수 있다. 한·미·일은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고 있는 우방 아닌가. 아베 총리가 ‘나눔의 집’을 찾아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주름진 손을 잡고 사과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장면을 보고 싶다.
우상규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