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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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호세프 오늘은 박근혜의 내일?


약 1년 전쯤부터 탄핵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지난 8월 탄핵 당한  전직 대통령의 삶과 심정은 어떨까.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우마 호세프(69) 전 브라질 대통령과의 인터뷰 기사를 24일(현지시간) 게재했다. 기사 제목은 ‘시민 지우마: 호세프가 탄핵 이후 삶을 돌아보다’.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호세프는 최악의 경제난과 부패 스캔들, 정부 회계 조작 혐의로 지난 5월 탄핵절차가 개시되면서 직무가 정지됐고, 석달 뒤인 8월말 탄핵이 확정됐다.

◆"탄핵 이후 삶, 힘들어도 인생 최악은 아냐"

일반 시민으로서 호세프의 요즘 삶은 1년 전과 크게 다르다. 브라질리아 대통령궁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 만찬을 즐기는 대신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어머니 아파트에서 낮에 시장에서 사 온 찬거리로 소박한 저녁식사를 한다. 아침엔 여전히 거리에서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기지만 ‘철통경호’를 받았던 탄핵 전과 달리 지금은 경호원 1명만이 뒤를 따른다.

"하루하루가 힘들긴 합니다. 그래도 올해가 제가 겪은 최악의 해는 아니에요. 정말이지 절대 아닙니다."

호세프 전 대통령이 겪은 인생 최악의 시기는 군부독재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붙잡혀 온갖 고문을 당했던 1970∼72년이다. 그가 속했던 좌파 게릴라 조직원들 이름을 말하라며 거의 매일 발가벗겨져 두들겨 맞고, 전기고문을 당했다. 호세프는 가디언에 "그 때에 비하면 지난 1년 중 가장 절망적인 순간조차 그래도 참을 만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탄핵 정국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으로 지난 4월 17일 하원의 탄핵안 가결을 꼽았다.

◆"속으로 ‘딱 10분만 더 버텨보자’고 되뇌어"

호세프는 "그날에 대한 기억은 만화경 처럼 파편적이고 변화무쌍하다"면서 "뭐라고 콕 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슬픔과 절망,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호세프는 그날 대통령궁에서 그의 정치적 멘토이자 전임자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과 함께 TV로 하원의 탄핵안 표결 과정을 지켜봤다. 그날 룰라는 울부짖었고, 호세프는 팝콘을 갖다달라고 했다.

"울던 룰라가 저를 안더니 ‘지우마,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전 울지 않았어요. (우는 건) 제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이 아니거든요."

호세프는 가디언에 약 45년 전 자신이 체득한 슬픔과 절망, 분노의 극복 비법을 공개했다. "언제라도 지금의 상황을 끝낼 수 있다고 자신을 속이는 겁니다. 속으로 끊임없이 ‘이제 곧 끝난다’ ‘곧 관둔다’고 되뇌입니다. ‘앞으로 딱 10분만 버티자.’ 그 10분이 지나면 ‘앞으로 정말 딱 10분만 더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죠."


◆"브라질의 여성혐오 정서가 탄핵의 주된 요인"


호세프 전 대통령은 그래도 브라질 극우 기독민주당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탄핵 정국 당시 내놓았던 주장들이 아직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탄핵 이전에도 "군사정권 당시 거리는 안전했고 경제는 연 6%씩 성장했다"고 군부 독재를 미화했던 보우소나루 의원은 상원의 탄핵 찬반 투표 직후 "호세프에게 공포를 안겨줬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브릴란치 우스트라 대령에게 찬성표를 헌정한다"고 말했다. 브릴란치는 브라질 군부독재 시절 호세프에 대한 구타, 성고문, 전기고문을 담당한 고문 기술자다.

호세프는 자신이 탄핵된 데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혐오’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믿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여성 대통령이 반대 의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정책 결정을 내리면 국민이나 동료 정치인 대부분은 ‘강하다’는 평가 대신 ‘독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중잣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브라질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그간 저에게 벌어졌던 사태의 한 요인이었습니다. 물론 증명하기는 힘들고 100% 그것(여성혐오) 때문이진 않지만 한 요인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가디언 "호세프, 브라질의 참담한 오늘을 만든 주범자"



가디언은 호세프 전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이 해명 또는 변명이라고 봤다. 브라질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사상 초유의 경제대란  ▲집권당의 부정부패 ▲호세프의 ‘말바꾸기’였다. 호세프 전 대통령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광범위한 정치자금 살포는 나랑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탄핵 국면에서 호세프의 주요 지지층인 브라질 좌파는 예산삭감을 ‘변절’이라고 비판했고, 반대파였던 우익 진영은 경제실정을 먼저 이야기했다. 마지막 대다수 국민은 한때 원칙주의자였던 호세프가 룰라 대변인에 불과했다는 점을 실감했다고 한다.

첫 번째 탄핵 배경에 대해 호세프는 미국발 신자유주의 바람에 따른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항변했다. 민심과는 동떨어진 변명이었다. 두 번째에 대해선 "모든 브라질 정치인들이 다 그랬다.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했다. 당장 무능한 우파보다 부도덕한 좌파가 더 싫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특히 세 번째 사유가 호세프 탄핵의 직격탄이 됐다. 위치가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 영국의 진보성향 매체 가디언은 세 가지 주요 호세프 탄핵 사유에 대해 선을 그었다. 변명 없는 무덤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호세프 당신은 일단 실패했다. 그리고 작금의 브라질 현실을 당신이 만든 것이다. 그 책임은 바로 당신 호세프 당신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