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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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갤러리] 도예와 회화의 만남… 지혜의 세계를 열다

정길영 ‘풍경’
도자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길영 작가는 원래 도자전공자가 아니다. 서양화, 설치미술, 영상예술 등 다방면의 예술 활동을 펼치던 그가 도자에 빠진 것은 도자의 메카인 중국 경덕진에 매료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아예 작업실을 경덕진에 마련했다. 손수레와 첨단 도자기법이 공존하는 모습에 흠뻑 빠져들었다. 동서고금의 모든 상상력을 버무려 낼 것만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

도판 위에 그린 그림이 불과 어우러지면서 변화무쌍한 색채의 향연을 펼칠 때면 그는 행복감에 빠져든다.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맛이다. 모든 시름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현생에서 사는 데 그리 많은 게 필요치 않다는 점과 미래보다 현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요즘 그의 몸에선 열정이 즙처럼 나온다. 화가냐 도예가냐 하는 분별심마저 사라지면서 춤을 추듯 작업하게 됐다.


(도자화. 내년 2월10일까지 마리갤러리)
“분별심이란 게 참 묘합니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땐 중국어를 못 알아들어 오히려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차츰 중국어를 알아들으면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구별을 하게 되니 마음에 불편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그제야 작업은 지혜와 상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혜란 사물을 관찰해 그것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통찰하는 것을 말한다. 나쁨과 좋음, 회화와 도자의 세계도 그런 것이다.

보통 지혜는 분별지(分別智)와 무분별지(無分別智)로 나눈다. 분별지는 외적인 대상을 향해 있고 언어적인 분별을 동반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판단할 때 자주 사용된다. 반면에 무분별지는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있고,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데 사용된다. 예술이 그런 세계다.

정길영 작가는 그의 장기였던 회화에 도자기를 결합해 조각, 건축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오브제가 올려진 도판 그림, 마스코트가 손잡이로 붙어 있는 커피잔 등은 이런 다양한 시도의 결과물들이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 우연과 필연, 인공과 자연, 전통과 현대 등 양가적 개념의 유희를 즐기고 있다. 무분별지의 세계다. 이제 그는 중국인들을 다시 평온한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어쩌면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세밑 모든 분별지를 털어낼 시간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