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대 이집트인들이 만든 소 미라.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미라라고 하면 떠올리는 건 붕대를 칭칭 감은 인간이다. 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집트 보물전’을 보고 나면 그것이 일종의 편견임을 알게 된다. 이집트인들은 소 뱀 악어 매 따오기 쥐 고양이 등 다양한 동물들의 미라를 만들고, 정성스럽게 관까지 만들어 안치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미라의 주인공은 단연 동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유물 중 가장 많은 동물 미라다. 사카라의 따오기, 개 무덤에서는 각각 400만구, 700만구 이상의 미라가 발견되는 등 이집트 전역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 미라가 출토됐다.
따오기 미라 |
봉헌용 동물 미라를 만든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박물관은 “지금까지 밝혀진 증거만으로 확실한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면서도 하나의 가설을 제시한다. “동물의 영혼이 이승의 사람과 신들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견해다. 이를 뒷받침하는 유물이 동물 미라와 함께 발견된 ‘신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집트인들은 편지를 통해 신에게 항의하고, 요청하고, 맹세했다. 기원전 520년, ‘유프아아’는 따오기 미라와 함께 직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토로한 편지를 묻었다. 따오기 신인 ‘토트’를 모신 사제였던 유프아아는 직장 동료인 ‘파셰르타이헤트’ 때문에 사제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웨네페르’라는 남자는 ‘이르피’라는 여자에게 벌을 내려 달라고 요청한 편지를 썼다.
박물관 관계자는 “동물의 ‘바’(ba·혼)는 인간의 바와 작동 방식이 거의 비슷했고, 인간 목소리의 안내 하에 초자연적인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며 “따라서 특정 신과 연계된 동물을 미라로 만들면 신에게 항의하거나 요청하거나 맹세를 전달하는 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고 소개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매장할 때 사용한 관(왼쪽). 내부를 촬영한 사진에는 고양이 사체가 선명하게 보인다. 동물 미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신과 인간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했을 것이란 설명이 제기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경주 천마총에서는 수십 개의 달걀이 들어 있는 단지, 백제의 고분에서는 달걀 껍데기가 들어있는 접시가 나왔다. 무덤 속 달걀은 주인에게 주는 부장 식량이었을 것이다. 동물 민속연구로 유명한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이를 재생, 부활의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했다. 천 관장은 “껍질을 깨고 닭으로 성장하는 모습에서 (피장자의) 부활을 기원하거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대했을 것”이라며 “새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잇는 메신저 역할로 종종 상징되고는 한다”고 말했다. 이집트인들처럼 인간과 동물을 동격으로 놓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고대 매장문화에서 동물의 역할을 읽을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지배층의 무덤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한 석물을 배치하거나, 조선왕릉에 석양·석호 등의 동물상을 세운 것에서도 한국인들이 그린 사후세계에서 동물이 중요한 배역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덤까지 가진 특별한 동물들도 있었다. 조선시대 중·후기에 이르면 전국 각지에 말, 소, 개 등의 무덤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곳에 묻힌 동물들은 생전에 의로운 일, 좋은 일을 한 것으로 여겨졌다. 호랑이와 싸워 주인을 구한 소, 주인과 함께 전쟁을 치른 말 등을 기린 것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