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지옥에서 천국으로’. 유승민 의원이다. 다 죽다가 살아났다. 지난해 6월 국회법 파동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힌 것이 운명을 갈랐다. 유 의원은 급기야 진박(진박근혜) 감별사가 설친 올해 4월 총선 때 공천 배제의 쓴맛을 봤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유 의원의 연말은 전혀 다르다. 팔자가 바뀐 것이다.
이승현 편집인 |
둘째, ‘천국에서 지상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내달 귀국한다. 지구촌 리더 자리에서 내려와 고향 땅을 밟는 것이다. 다음 목표는 차기 대선이다. 그는 얼마 전 “국민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와 거리를 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도 배신 공방에 휩싸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신했고, 박 대통령도 배신했다는 것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친문(친문재인) 진영은 독설깨나 쏟아낸다. 민주당 박경미 대변인은 “‘소설 꺼삐탄 리’ 속의 이인국 박사와 꼭 빼닮았다”고 했다. 상류층 의사인 이 박사는 일제 강점기엔 친일, 북한에선 친소, 미군정 땐 친미로 변신을 거듭하는 작중인물이다. 왜 이렇게 쪼아댈까. 대선 상품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친문 사람들에겐 눈엣가시다. 반 총장은 진창에서 구를 각오를 해야 한다. 꽃가마나 아스팔트 길은 이 땅에 없으니까.
다시, ‘지옥에서 천국으로’. 민주당 유력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다. 많은 이들이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얼마나 볼품없었는지를. 야당은 자중지란을 빚다 분당으로 직행했다. 그 과정도, 결과도 여간 꼴사납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더 꼴사납지 않았다면,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민주당이 빛을 보는 오늘은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문 전 대표는 배신 프레임의 최대 수혜자다.
문 전 대표는 최근 “대통령 (당선이) 가능한가”라는 기자 질문에 “자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과한 감이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그제 문 전 대표의 ‘혁명’ 발언에 대해 “조금 과했다”고 촌평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문 전 대표가 새 진보의 가치를 속 시원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표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배신 드라마의 중심에 있는 박 대통령이다. 지옥에도 계급이 있다. 단테의 ‘신곡’에선 9개 지옥이 층층이 쌓여 있다. 맨 아래 제9지옥에 갇히는 이들은 배신자다. 단테가 보기엔 은인을 배신한 자가 그중에서도 가장 나쁘다. 특별 구역에 감금된다. 카이사르를 살해한 브루투스,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거기에 있다. 박 대통령은 왜 지난해 6월 그 유명한 배신 발언을 했을까. 바로 그 구역으로 유 의원을 날려버리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로 덧없이 한 해를 보내면서 그 유명한 발언을 곱씹게 된다.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발언은 결국 부메랑이 됐다. 대통령이 유 의원 대신 그 구역에 간 것이다. 대선 잠룡들 모두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이참에 정치인의 말은 부메랑이 되기 쉽다는 교훈만 깊이 새겨도 새해 정치 기류는 한결 맑게 정화될 것이다. 차기 대선 또한 덜 꼴불견이 될 테고.
이승현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