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에 ‘2차 내전’ 발발이 임박했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친박(친박근혜)계 핵심들에 대한 인적청산 의지를 천명하면서다. 친박계는 “당을 깨자는 것이냐”며 조직적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계기로 벌어진 ‘1차 내전’의 결과는 새누리당 분당이었다. ‘2차 내전’은 당 대표에 해당하는 비대위원장과 최대 주주인 친박계 간 물러설 수 없는 정면승부다. 당 해체 수순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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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30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들의 자진 탈당을 촉구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인 비대위원장은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적청산’ 대상을 △박근혜 정부하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자 △총선 과정에서 당의 분열과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한 자 △무분별하고 상식에 어긋난 지나친 언사를 한 자 등 세 부류로 분류했다. 인 비대위원장은 대상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당내에서는 ‘청산 후보군’ 명단이 돌아다녔다. 명단 대부분은 분당 전 비박(비박근혜)계가 자진 탈당을 요구했던 ‘친박 8적’ 이다. 당시 비박계는 “국정을 농단하고 민심을 배반하고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방기한 ‘최순실의 남자들’”이라며 이정현 전 대표, 조원진·이장우 전 최고위원,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김진태 의원 등 8명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비박계가 제시한 자진 탈당 사유와 인 비대위원장이 제시한 사유도 비슷하다. 또 현 정부 내에서 장관직을 지냈거나 4·13 총선과정에서 친박계 입장을 대변했던 지도부 인사 등이 청산 대상으로 거론된다. 그 대상은 15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인 비대위원장은 배수진을 치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내년 1월6일까지 탈당 시한을 주되, 이것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8일 기자회견을 통한 자진사퇴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인적청산 없이 비대위를 구성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며 “내가 인적청산을 못하면 끝난다”고 잘라 말했다.
인 비대위원장이 인적청산 카드를 꺼내들며 새누리당은 내년 초 극한 내홍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 대통령 탄핵 사태 전후에 펼쳐진 ‘1차 내전’의 경우, 지도부가 친박계 일색이어서 비박계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1차 내전은 분당 및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당권을 쥔 인 비대위원장이 친박계를 몰아세우고 있다. 인 비대위원장을 추천한 이는 당의 ‘투톱’인 정우택 원내대표다. 친박계가 인 비대위원장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인 비대위원장·정 원내대표 모두가 물러날 수 있다. 당 지도부가 사라지면 당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최악의 경우 공중분해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인 비대위원장이 이런 상황까지 내다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인적청산 제안이 거부되면 인 비대위원장은 곧바로 당을 나가면 되고, 그렇게 되면 모든 책임을 친박계가 뒤집어쓰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친박계들은 강력 반발했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인 비대위원장의 목적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전통적 보수층들이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모임을 갖고 대책 논의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박계 의원도 “강하게 반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말했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2선후퇴’나 ‘자진탈당’ 자체는 필요하지만 인 비대위원장이 대상을 특정하지도 않고 몰아붙이는 것에 대해 ‘숙청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하는 기류가 읽힌다. 친박계의 공식 대응은 주말을 거친 뒤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