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건이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1894년)과 명성황후 시해가 일어난 을미사변(1895년)이다. 갑오, 을미, 병신, 정유를 회고하면서 100여 년 전 구한말의 역사적 이미지가 오늘에 오버랩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병신년을 피해간 100여 년 전과 지난해 병신년의 ‘촛불시위’ ‘병신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자는 ‘현대판 동학혁명’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동학농민운동은 내우외환에 빠진 조선이 결정적으로 일본 군대 수중에 들어가게 한 사건이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
지금 대한민국은 아수라장에 빠져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 탄핵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되는 해이고, 여야 정치권은 4당체제로 가열하고 있다. 조선조 사색당쟁의 모습 그대로다. 당쟁에 이골이 난 여야 정치인들은 보나마나 비방과 날조와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기 않고 오직 승리만을 위해 사생결단할 것이다. 국민들이 얼마나 여기에 현명하게 대처할까 의문이다.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 근거 없는 비방과 날조로 재미를 톡톡히 본 정치권은 극심한 혼란상으로 분별력을 잃은 국민들을 우롱하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좌파에 ‘진보’라는 수식어를 타성적으로 붙여왔다. 그런데 이젠 좌파도 기득권을 지키기에 바쁘니 ‘진보’가 아니고, 마찬가지로 보수도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를 생각하지 않으니 ‘우파’가 아니다. 오직 ‘당쟁천국’이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 탄핵이 안 되면 혁명밖에 없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은 도리어 대통령 탄핵의 진원지를 의심케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공개한 남북한 밤의 모습을 찍은 위성사진을 보면 남한은 대낮처럼 밝은데 북한은 글자 그대로 암흑이다. 이 사진 한 장은 70년 전 한민족이었던 사람들의 엇갈린 삶의 운명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극적인 대조는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69년 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으로 엇갈린 역사운명과 궤를 같이한다. 대한민국 수립은 솔직히 남한 국민의 선택이었다고 할 수 없다. 단지 한반도 남쪽에 살았기에 부여받은 행운이었다. 남한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볼셰비키 혁명(1917년)에 의해 탄생한 소비에트연방은 69년 만인 1987년 해체되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공교롭게도 정유년은 남북한 정권이 성립되지 만 69년째이다. 남한은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하지만, 북한 정권도 폭압정치에 대한 불만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 잠재해 있다고 한다. 겉으로 3대 세습체제를 구축했다고 하지만 북한 주민의 탈북과 고위층 망명 사태는 북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읽게 한다.
남북한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남북한은 한민족이기 전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로서 소득이나 국력에서 최소 20∼30대 1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천국과 지옥이 따로 없다.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풍자한 ‘헬조선’은 그야말로 북한의 헬조선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남한의 헬조선은 생존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인 빈곤이나 박탈감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은 공산당 귀족과 평양시민을 제외하면 통째로 헬조선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열심히 살려고 하면 결코 헬조선이 아니다. 청년들도 각자의 재능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발전을 꾀한다면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천국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런 경제적 기반과 문화적 주체 역량을 가지고 있다. 신의 한 수인 유엔의 탄생으로 건국한 대한민국은 역시 신의 한 수인 유엔군의 힘으로 북한의 침략을 막아냈고, 이제 다시 3번째 신의 한 수로 통일을 이루는 것은 아닌지, 새해 벽두에 궁금증이 일어남을 어쩔 수 없다. 역사의 신 앞에 경건해지는 까닭은 오늘의 우리 판단이 우리 후손들의 업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조상’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박정진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