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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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연 특파원의 월드와이드 뷰] 박근혜·닉슨·트럼프의 블랙리스트…포용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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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와 같이 미국에서도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백악관에서 축출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킨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장본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도 대선 기간 워싱턴포스트 등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사와 기자 등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취재를 거부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이후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자의 취재를 허용했으나 트럼프 진영이 미국 사회 각계에 걸쳐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시사종합지 뉴요커가 최근 보도했다.

워터게이트는 1972년 민주당 조지 맥거번 후보의 선거대책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호텔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던 남자 5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되면서 시작됐다. 닉슨은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연방수사국(FBI) 등에 수사방해 지시를 내리는 등 불법 행위를 일삼았다. 미 하원 법사위는 급기야 닉슨 탄핵안을 가결했고, 탄핵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게 확실시되자 닉슨은 1974년 8월8일 사임했다.

뉴요커는 “닉슨이 배우 캐럴 채닝, 프로풋볼 바이킹의 쿼터백 프랜 타켄턴 등이 포함된 ‘반대자 리스트’(enemies list)를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또 “닉슨이 자신의 정권에 반대하는 주요 인사 명단을 만든 뒤 이들을 사찰해 꼼짝 못하도록 제압했다”고 전했다. 닉슨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표적인 집단은 반전운동가였다. 닉슨이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을 무력화한 대표적인 수단은 국세청(IRS)을 동원한 세무 사찰이었다.

트럼프 당선자의 권한이 커질수록 블랙리스트 명단이 늘어날 것이라고 뉴요커는 전망했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에 반대했던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과 워싱턴포스트 소유주 제프 베저스 아마존 회장 등이 리스트에 오른 핵심 인물이라고 한다. 트럼프 당선자는 베저스를 반독점규제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트럼프가 취임하기도 전에 트럼프 탄핵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체인지’(change.org)라는 단체를 만들어 선거인단이 트럼프를 선출하지 못하도록 청원운동을 전개해 490만명가량의 서명을 받았고, 이제 트럼프 당선자의 ‘이해상충’ 논란을 문제 삼아 탄핵 서명 운동을 펴고 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다가 탄핵되거나 탄핵 압력을 받는 박근혜, 닉슨, 트럼프의 공통점은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정적이나 반대 세력을 적극 포용하지 못하는 성격상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대통령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탄핵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