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만 해도 검사역이 뜨면 벌벌 떨었는데….” 누군가는 옛날을 회상하며 개탄했다. “그런 긴장감 조성만으로도 자정기능이 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또 다른 이는 “명검사역조차도 형식적인 리포트나 쓰고 있는 현실”에 혀를 찼다.
류순열 선임기자 |
피감기관인 금융회사들이야 불만일 리 없다. 검사라고 해봤자 아픈 지적도 없으니 긴장감이 예전 같지 않다. “뭐 이렇다할 지적도 없고 금융사들은 좋지. 그런 검사 받아놓고 아무 이상 없다고 선전도 한다. 실상은 아닌데….” 한 관계자는 “형식적 검사로 금융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워치독(watchdog)으로, 금융시장의 위험을 먼저 감지하고 경고음을 내는 게 주 임무다. 바로 그 위험을 감지하는 일이 검사인데, 내부에서부터 그 ‘본질적 업무’가 의심받는 상황이다. 금감원의 정체성이 흐릿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정체성을 잃어가면서 사기도 떨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익명의 난상토론에 금감원 수뇌는 냉소적이다. 고위 관계자는 “당사자 의지의 문제다. 부당한 사안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하지 말라고 한 적 없다”고 말했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개편된 검사체계와 그 분위기를 감안할 때 공허한 얘기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검사체계를 사실상 경영컨설팅을 해주는 ‘건전성검사’와 위법행위를 잡아내는 ‘준법검사’로 이원화하면서 금감원의 검사기능은 전체적으로 약화했다는 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수뇌가 강조하는 ‘시장친화적 검사’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다. 수뇌가 잡아놓은 흐름을 아래서 개인의 의지로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언젠가부터 건전성검사를 나가 문제점을 찾아 지적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풍토가 생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뭐라도 지적하면 마치 금융시장에 걸림돌이 되는 양 주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익명의 폐쇄적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물검사 논란이 금감원 내부 문제일 수만은 없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것에 치우치다보니 정작 소비자 피해 가능성이나 다른 위험 징후는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익명의 하소연은 시사적이다. 연장선에서 “이러다 큰일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제2의 저축은행 사태 같은 대형사건이 터질 수 있다는 말이다. 저축은행 부실은 2010년 봄부터 공공연히 위험성이 거론되던 ‘시한폭탄’이었다. 그러나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그해 가을 G20(주요 20개국)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권이 “잔칫상에 재 뿌리지 말라”며 덮은 결과다. 금융당국이 제 역할을 했다면 터지지 않았거나 최소한 ‘호미’로 막았을 것이다.
‘순한 워치독’의 근본적 이유는 금융감독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금감원은 금융정책 당국인 금융위의 지도·감독을 받는 예속기관이다. 독립성이 없다. 금융시장 육성과 금융시장 규율이라는 충돌적 목표를 한 울타리 안에서 추구하는 구조다. 그러니 금융위가 '액셀'을 세게 밟을 때 금감원은 '브레이크'를 밟기 어렵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감원장 양 수장은 ‘혼연일체’를 외쳐온 터다. 그 구호 아래서 금감원은 정체성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결국 해답은 ‘금융감독의 독립성’이다. 그래야 골든타임에 경고음을 울릴 수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은 또 올 수 있다. 지난 2년여간 “빚 내서 집 사라”는 정부 정책으로 가계빚이 무섭게 늘 때도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류순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