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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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좌편향 댓글 못 봐주겠다"… 스마트폰 배우는 실버워리어

온라인 참여 확산… 편향적 여론몰이 우려 / 박사모 카페·포털뉴스 등에 댓글 / 온라인서 정보 가공 익숙지 못해 / 입맛 맞는 정보 퍼뜨리는데 그쳐 / 특정 의견 편중… 세대 갈등 우려
“배워서 ‘진실’을 알려야지….”

지난 2일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의 한 컴퓨터 수업에서 만난 김모(79)씨는 스마트폰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백발이 성한 노인임에도 “온라인 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휘문고 학생 애국집회 연설’이라는 메시지를 보인 김씨는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영상과 글들이 있다”며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진실들”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된 해당 학생은 다른 학교 소속으로 밝혀진 바 있다.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컴퓨터 수업을 듣는 한 노인이 스마트폰을 보여주고 있다.
공무원 출신인 이모(82)씨도 스마트폰 ‘삼매경’이다. 최근 ‘댓글 다는 법’ 등을 배운 이씨는 “포털 뉴스의 댓글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이씨는 “최순실 뉴스에는 좌편향 댓글 일색”이라며 “대통령이 탄핵될 상황은 아니다. 보수 의견도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는 보수성향의 60세 이상 노인들 사이에서 최근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워 ‘이념전쟁’에 나서는 이른바 ‘실버 워리어’(실버와 키보드 워리어의 합성어)가 적지 않다. 이들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카페, 포털 뉴스 등 온라인에서 자발적인 댓글 부대로 활약하며 여론전에 힘을 쏟고 있다.

동대문·종로·강남구 등 8개 권역 노인복지센터만 해도 ‘최순실 국정 농단 관련 뉴스를 보기 위해’ 컴퓨터 수업을 듣는다는 노인이 상당했다. 1분기 130명 정원인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스마트폰 수업에는 230명이 신청했다. 15명 정원인 강남노인종합복지관 수업엔 40명 넘게 몰려 공개 추첨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의 의욕만큼 전투력도 상당해 보였다. 매일 100통 이상 메일을 보낸다는 정모(75)씨는 8일 “주로 종북세력의 실체를 지인들에게 전파한다”며 “보수진영 영상을 널리 퍼뜨려야 사람들이 진실을 안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 활동무대인 박사모 카페에는 ‘박 대통령에게 해가 간다’는 등의 이유로 국회입법예고 시스템에 올라온 법안에 반대의견을 유도하는 이른바 ‘좌표찍기’ 현상도 벌어지는데, 이에 동조하는 댓글이 10만건 이상 달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지닌 ‘산업화 세대’의 상실감 표출로 풀이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43.8%가 탄핵에 반대했다. 서울대 곽금주 교수(심리학)는 “자존감이 떨어진 노년층이 ‘보수의 글’을 나르며 상실감을 채우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컴퓨터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보니 ‘입맛에 맞도록’ 가공된 정보를 퍼뜨리는 데 그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차별해 수용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현상이다.

이에 반발한 젊은층의 대응 움직임도 도드라지는 추세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편지를 ‘문재인이 보냈다’고 꾸며 감쪽같이 속은 박 대통령 지지층의 악플을 유도하거나 ‘가짜 뉴스’로 노인들을 골탕먹이는 ‘틀딱(노인 비하 용어) 농락’ 등의 신조어가 확산하고 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정치외교학)는 “온라인에서 노인들의 활발한 활동은 정보격차를 줄이는 데 긍정적”이라면서도 “온라인 공간이 이념전쟁이나 세대갈등의 장으로 변질돼 특정 의견만 강화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창수·이창훈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