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와 응모자 연령대는 다양했다. 한 심사위원은 특정 연령대에 몰리지 않고 20대부터 70대까지로 짐작되는 다양한 연령층의 응모가 다른 문학상에 비해 유난히 눈에 띄는 것 같다고 했다. 노년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난 것도 이러한 응모자 연령층의 다변화와 연관될지 모른다는 분석이다. 물론 우리 사회가 갈수록 고령자가 늘어가는 실버 사회라는 점을 간파한 예리한 소재 선취의 한 경향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나이를 먹고 노년에 적응해가는 기존의 식상한 이야기와는 달리 노년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이야기가 확실히 소설의 한 경향으로 등장하고 있는 추세라는 시각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탄핵 열풍도 응모작들에 반영됐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과 관련해 너무나 현실과 비슷한 정치?사회 풍자가 이루어져 소설이라기보다 기사 같기도 하여 현실과 간극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우리가 부딪치는 청년실업, 빈부 격차에 따른 사회적 불안 같은 갈등들이 소설로 바뀌려면 소설적 구성이 갖춰져야 되고, 무엇보다도 상상력이 가미돼 현실과 다른 이야기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대부분 응모작들에 세태는 들어와 있지만 소설적 변형 과정에서 아쉬운 작품들이 많았다는 분석이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SF소설도 크게 늘어나 지난해 알파고의 충격이 문학적 상상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방증했다. 외국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도 많았다. 몇 년 전부터 확산된 경향인데 전 지구적 세계무대를 배경으로 한 서사들이 이채롭긴 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는 지적이다.
13회 세계문학상 예심이 끝났다. 심사는 많은 응모작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작품을 골라내는 일이기도 하다. 탑처럼 쌓여 있는 응모작들의 운명은 이달 말 가려진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들 중에서 본심에 올린 작품들은 끝까지 읽히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의미 부여가 가능한 미덕들을 갖추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스릴러 버전이라고 평가받은 작품은 사는 동네가 부여하는 위화감과 계층적 갈등을 배경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생성되는 권력관계와 범죄를 사회 구조적인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 써낸 점이 눈에 띄었다. 월남전 참전용사 출신 두 노인과 함께 불가피하게 길을 떠나는 4인의 로드무비 형식 소설도 눈길을 끌었다. 로드무비 스타일이 자칫 지루하기 쉬운데 에피소드가 다양하고 스릴과 박진감이 느껴진다는 평가다.
이른바 ‘사이비 악’이 ‘진짜 순수 악’에 응징당하는 이야기도 독특했다. 이 작자가 규정하는 ‘사이비 악’이란 어쭙잖은 정의감이나 선에 대한 의식인데, 도덕적 태도와 비판이 어설플 때 진짜 악이 응징해버린다는 구도로 말이 안 되지만 말이 되게 밀고 나가는 전개가 흥미로웠다는 평가다.
소설 기본도 갖춰져 있고 이야기 전개 방식이나 생각이 현대적이고 창의적인 면이 있는 역사소설을 발견한 것도 수확이었다. 갈수록 개인화 파편화되면서 공감능력이 상실되는 현실에서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공론장 역할을 기대한 작품도 본심에 올라갔다. 이 심사위원은 좀 더 넓고 젊은 지평에서 사유할 수 있는 소설이어서 반가웠다고 평했다. 많은 응모자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와 위로를 드린다. 세계문학상은 이제 다시 한국 장편문학에 새로운 힘을 보탤 수상작을 기다리는 중이다. 2월 1일자 세계일보 창간기념호 지면에 발표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