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밀착취재] "촛불 민심은 재벌 개혁을 원한다"

12차 촛불집회를 뒤덮은 재벌 구속
올 겨울 최강 한파가 시민들의 외투안을 파고들었지만, 촛불집회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계속된 12차 주말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으로 10만여명의 시민이 운집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특히 재벌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눈길을 끌었다. 

강추위가 몰아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12차 범국민행동의 날 행사에서 시위대가 롯데백화점 본점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1500개 시민사회단체 연대모임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14일 오후 광화문 일대에서 ‘즉각퇴진, 조기탄핵, 공작정치 주범 및 재벌총수 구속 12차 범국민행동의 날’을 개최했다. 최근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논의하면서 이날 촛불집회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재벌에 대한 규탄이 끊이지 않았다. 퇴진행동측은 “최순실 게이트의 뒤에는 주요 그룹 총수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다”면서 “국정농단의 공범인 재벌들을 즉각 구속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LCD 공장에서 근무하다 뇌종양을 얻어 투병중인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는 “삼성은 우리 딸은 외면하면서 최순실의 딸에게는 몇 십억원 짜리 말을 사줬다”면서 “돈과 권력으로 순위를 매기는 세상이 아닌 사람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을 받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인태연 중소상인비상시국회의 의장은 “동네마다 생기는 대형 복합 쇼핑몰은 떡볶이 한 그릇까지 점령하고 있다”면서 “우리 미래는 재벌 혼자 배부른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추위가 몰아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12차 범국민행동의 날 행사에서 시위대가 SK 본사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일반 시민들도 재벌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충남 아산에서 상경한 김미순(49)씨는 “너무 춥다. 하지만 내 마음이 더 춥다. 현대차 납품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직장폐쇄를 당해 나는 7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동료들은 아직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회사는 2016년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200명의 용역까지 동원해 우리를 핍박했다”면서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재벌과 돈을 나눠먹고 기업 총수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공권력을 남용한 결과다. 비정규직들 20~30년간 열심히 일하다 결국 버려진다. 재벌들은 우리를 다 돈으로 생각한다. ‘돈 안주는데 너네 버틸 수 있어?’라는 생각이다. 우리도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기 안양에서 온 취업준비생 박민식(26)씨는 “여기 와서 들은 얘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통해 얻은 이득이 3조원에 달한다더라. 3조원이면 연봉 3000만원 짜리 청년 실업자 10만명을 구제할 수 있는 액수다. 청년 실업은 늘어만 가는데, 일자리 창출을 하지 않고 제 뱃속만 불리는 재벌들의 행태에 눈이 뒤집힌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해서 정치권뿐만 아니라 재계도 강력하게 개혁해야 한다”고 분노를 토해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갖게 해주고 싶어 촛불집회 현장에 나왔다는 박광수(50대)씨도 “외국 대기업 총수들은 엄청난 거액을 기부하는 등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한국의 재벌들은 자기 부만 챙길 줄 알지 사회에 부를 나누지 않는다. 가진 것을 나누고 더불어 잘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재벌들은 자기 이익에 도움되는 권력자들에게만 돈을 바친다. 이런 행태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본점 앞 탄핵촉구 촛불 시위대. 연합뉴스
본 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7시부터 청와대와 총리공관을 비롯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SK 최태원 회장과 롯데 신동빈 회장을 겨냥해 SK그룹과 롯데그룹 본사가 위치한 도심 방면으로 행진했다.

남정훈·안승진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