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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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정경유착 청산… 재벌개혁, 대선정국 활용 안돼"

기업 위기 원인·해법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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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의 중심이 대통령 탄핵에서 재벌개혁으로 옮겨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유를 입증하기 위해 초점을 맞춘 대기업 수사에 대선발 정치 공세까지 가세하며 ‘재벌 개혁’ ‘재벌 해체’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재계는 안팎에서 몰아치는 삭풍에 살얼음판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권 출범을 앞둔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중국의 사드 보복 수위가 높아지는 시점에서 재계에 쏟아지는 전방위 압력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려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정치외풍’에 휘둘리는 기업의 고질을 치유할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편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기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권력분산형 시스템으로의 정치개편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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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재벌 해체’ 주장까지 나왔나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에 재벌이 피해자이자 개혁 대상으로 몰린 것은 유신정권 시절의 잔재인 정경유착을 청산하지 못한 대가라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의 재벌 독대→ 정경유착→ 부패로 이어지는 고리는 박정희 정권 경제체제의 전형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내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내도록 강요하고 비선실세의 사적 지원에도 동원했다.

전상길 한양대 교수(경영학부)는 “과거 개발시대에 기업은 정권이 주는 독점적 사업 기회를 발판으로 성장했고, 정권에 뇌물을 받쳐 그런 기회를 얻어냈으며, 정권은 그 돈을 정권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데 썼다”며 “그런 형태의 정경유착 행태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적나라게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중립적이고 객관적 감사 기능을 하며 우리 사회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하는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이 집권자 휘하에 있다는 것이 비극”이라며 “세 기관이 집권자 입맛에 따라 휘둘리지 않도록 대통령이 이들 기관에 임명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재계가 단순히 강압에 의해 돈을 뜯긴 피해자가 아니라 그 대가로 직간접 수혜를 보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수적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위해 최순실 모녀에게 거액을 지원했고, SK는 최태원 회장의 특별사면 및 면세점 사업 인허가 특혜를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물을 마시거나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재계 입장은 다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따로 불러 돈 내놓으라는데 누가 감히 거절하겠느냐”며 칼자루를 쥔 정권의 위세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정권에 밉보였다가 세무조사는 기본이고 오너의 사생활까지 탈탈 털리며 회사가 아예 문을 닫기도 했다”며 “정치 구태가 여전한데 어떤 기업인이 당당하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개혁 필요하지만 정치적 이용은 경계

정경유착은 한두 개 법안이나 제도로 단번에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치나 재계 어느 한쪽만 바뀐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논리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신대 교수)은 “정경유착을 끊으려면 기업이 변해야 한다”며 “(정권에서) 돈 내놓으라고 할 때 총수가 ‘내 권한이 아니다. 그런 지위에 있지 않다’라고 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총수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니 요구하는 것”이라며 “총수가 모든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이사회 의장으로서의 권한만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개혁을 정치권이 주도하고 대선 정국에 활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대권주자들이 주장하는 재벌개혁은 정경유착 차단이 아닌 기업 규제와 경제민주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영 효율성 제고와 투명성 강화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추진되는 지주회사 전환조차 제동이 걸리는 실정이다.
강추위가 몰아친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12차 범국민행동의 날 행사에서 시위대가 롯데백화점 본점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기업 스스로 변하지 못해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지금처럼 외압에 의한 개혁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치가 먼저 개혁하면 재벌도 스스로 개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과)는 “이번 사건이 정경유착 관행을 단절하는 데 시금석이 돼야 하지만, 정책이나 법을 더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며 “기존에 있는 법과 원칙대로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이 있어도 제대로 집행을 못해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검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재벌을 싸잡아 범죄집단으로 몰아붙이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대기업 매출액이 3년째 감소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며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 미국은 대기업 하나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 파격 인하, 상속세 인하 등 각종 대책을 세우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오 교수는 “수사결과를 예단해서 기업을 규제하려는 것도 문제”라며 “청년들이 희망하는 대부분의 일자리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인데 과도한 규제는 기업의 투자는 물론 일자리 확충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미·김승환·정지혜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