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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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대책없는 저출산대책

옛날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불과 30여년 전 ‘국민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 반에 60명이 넘는 친구들이 있었다. 어느 해에는 교실이 부족해 오전-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이 진행된 기억도 있다. 돌이켜보면 담임선생님이 학생 이름을 외우는 데만 한참이 걸렸던 것 같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를 외치던 때였다.

2017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출산율은 1.3명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로 떨어졌다. 인구절벽, 만혼·비혼, 초고령사회 등이 대한민국 앞에 붙는 수식어가 됐다. 이제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수는 2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안용성 경제부 차장
올해는 생산가능인구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기점이 되는 때다. 경제활동의 주축인 15∼65세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집 안에 돈 벌 사람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인구 절벽→소비 감소→경기 침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국가 경제 근간을 흔드는 문제다.

하지만 정작 정부의 위기의식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저출산 대책이라고 발표되는 내용들을 보고 있자면 ‘한가하다’를 넘어 ‘한심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행정자치부는 최근 ‘출산 지도’를 발표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출산율을 표시하면서 가임기 여성의 숫자 통계를 삽입한 게 공분을 샀다. “여성을 아이 낳는 가축 취급한다”, “정부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출산 지도는 운영이 중단되고 보완에 들어갔다. 정부는 가임기 여성 통계는 인구 정책을 다룰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데이터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도 마찬가지다. 올해 업무보고에서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결혼하는 부부에게 최대 100만원 세액공제’였다. 만혼·비혼 청년들을 결혼으로 유도하는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3포 세대’(연애·출산·결혼 포기)를 넘어 5포, 7포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에게 “100만원 줄게 결혼하라”는 대책은 안이하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기재부가 내놓는 저출산 대책치고는 수준 이하다.

저출산 정책의 컨트롤타워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다. 이 또한 2015년 12월 이후 1년 넘게 개점휴업 상태다. 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활동 내역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활동 내역으로 보기엔 민망할 정도다. 정부는 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교육부·환경부 등 6개 부처는 최근 위원회 산하에 인구정책개선기획단을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한 저출산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탄핵 정부’에서 제대로 된 저출산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고용·복지·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새 정부의 몫이다. 차기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국가 어젠다로 삼고 저출산위원회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담당 부처도 늘리고, 민간 전문가 참여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후 대한민국 모습을 그려야 한다. 저출산 대책은 몇몇 부처가 보고용으로 급조할 문제가 아니다.

안용성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