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긍정적 열망'의 시작으로, 국민이 분노를 모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1987년에 한국 민주주의의 씨를 뿌린 것이 한 세대인 30년이 지나고 나서야 싹을 틔운 것이다."
이처럼 최근 분노로 휩싸인 한국호(號)는 침몰하고 있을까. 아니면 바닥을 치고 다시 비상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해 대한민국은 정말 다사다난했다. 장막 뒤에서 은밀하게 행해지던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로 입건됐다.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을 지켜본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올해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은 최근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문과 의혹을 증폭시켰다.
◆세월호 참사, 올해도 꺼지지 않는 불꽃
17일 인공지능 기반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사회관계서비스망(SNS) 등 온라인에서 회자된 키워드를 분석한 것을 보면 최근 국민여론을 엿볼 수 있다.
다음소프트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13일까지 블로그(1억3371만4462건)와 트위터(32억1361만5211건)에서 '화제'·'이슈'·'뉴스' 등 단어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 10개를 추렸다. 이후 이들 키워드의 총 언급량을 집계, 올해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군 핫이슈 10개를 선정했다.
연간 키워드 중 1위는 총 1562만4633회 언급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만 1099만여회 언급, 1년간 총 언급량의 70%를 넘게 차지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을 규명하고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843만1203회 언급돼 두번째로 언급량이 많았다. 최씨가 박 대통령 집권 초기 이후 국정에 깊숙이 관여해왔고,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어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을 끌어모은 사실 등이 속속 드러났다. '최순실'이란 이름은 지난해 하반기 국정혼란의 중심이 됐다.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키워드 2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1위는?
다음으로는 총 682만1990회 언급된 '세월호'였다. 세월호는 2015년 조사에서는 1위에 올랐었다.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실종자 9명을 포함 참사의 원인과 박 대통령의 당일 행적 등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산재해 있다. 국민은 아직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다.
이밖에 △강남역 살인사건(545만8235회) △미국 대선(368만2114회) △필리버스터(367만99회) △한일 위안부 합의(197만회) △알파고 vs. 이세돌(148만9933회) △옥시 가습기 살균제(76만8258회) △브렉시트(46만7483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분노한 민심, 촛불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의혹'과 '논란'에 참고만 있지 않겠다
이와 함께 SNS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본 지난해는 이른바 '분노의 한 해'였다. 분노한 민심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더이상 '의혹'과 '논란'에 참고만 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다음소프트에 따르면 지난해 트위터와 블로그 등 SNS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 역시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었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느끼는 지배적 감정은 '분노'다. 실제 박근혜의 연관 감성어로 '분노'는 19만여회 언급돼 △잘못하다(3만7399회) △미치다(5만3551회) △망하다(3만6578회)를 압도했다.
최순실의 연관 감성어로 '분노'는 6만1145회 언급돼 '미치다'(2만4536회), '심각하다'(2만4264회) 등의 3배 가량이었다. 박근혜·최순실 연관 감성어로 '막장'도 각각 3만회가량 언급됐다.
◆이제 사회적 약자들이 제 목소리 내기 시작…아직 갈길 멀어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세달째 매 주말 거리로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연관어 가운데 '촛불'(61만7849회)은 △탄핵(87만1964회) △세월호(75만3476회) △퇴진(71만6566회) △하야(66만1430회) 등과 함께 등장했다. 특히 촛불은 △성주 사드 배치(4만1991회) △세월호(2만4510회) △백남기(1만8418회) △국정교과서(1만8244회) 등 현안마다 연관어로 등장했다.
촛불을 든 행동이 국민의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국민들의 분노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국민들이 분노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서게 됐고, 잘못된 것을 올바로 잡자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지난해는 획기적인 한 해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단순히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한 2015년과 달리 분노하기 시작한 지난해는 훨씬 더 적극적인 한 해였다는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