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불안해하며 북한 문제와 중국에 대한 정책변화를 주시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오바마 정부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는 사실상 강력한 제재만 시도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책이 돼 버렸다. 그렇게 하는 동안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통설이 됐다. 반면 향후 트럼프 정부는 더 강한 제재를 할 것이라 하고, 심지어 선제공격을 할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적인 사고’의 특징은 교섭의 판을 바꾸는 ‘역발상’(game changer)이다. 트럼프는 그동안의 교섭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 관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전략을 구사할지도 모른다.
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전 국제안보대사 |
미·중 간 대립은 우리에게 바람직한 전략적 구도가 아니다. 20세기 초와 냉전 시기에 미국은 러시아(구 소련)를 막는 데 일본과 중국을 이용했고, 지금은 일본과 한국으로 하여금 중국을 견제케 한다. 그러나 과거 이러한 전략은 일본의 아시아침략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또한 중국은 아시아 역내 국가이고, 지금의 동북아정세도 100년 전의 환경과는 전혀 다르다. 중국은 역사적 패권을 회복하려 하고, 일본은 전쟁범죄를 부인하며 침략역사를 미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인들은 역사왜곡 문제에 예민하다.
이에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이처럼 매우 복잡한 한·중·일·러 국가의 역사적 배경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데이비드 핼버스탐은 미국의 월남전 확대과정을 추적한 저서 ‘최고로 뛰어나고 명석한 자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에서 아시아 역사에 대한 미국의 무지를 아시아정책의 실패 원인으로 들었다. 이를 귀담아들어 한국의 차기 정부는 역사문제를 미국이 유용하게 활용하도록 조언도 하고, 새로운 평화협력 어젠다(의제)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정치학자 조지 프리드먼은 저서 ‘10년 후의 세계’(The Next Decade)에서 미국이 중국과 일본을 다뤄 나가는 데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한때 한국이 북한과 최소한이라도 대화 협력을 하고, 일본과 약간의 긴장관계를 겪고 있을 때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누구편이냐고 시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당장은 한국이 중국의 사드 보복을 의연하게 견뎌내고, 군대위안부 합의와 관련된 일본의 도발에 당당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미국에 보여줘야 한다. 이어 차기 정부는 한국 사회의 합의를 기반으로 초당적 외교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외교력 발휘를 위하여 외교 관료들은 책임의식을 갖고 창의성을 통해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전 국제안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