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 살 할머니도/ 늙은 아들 손잡고 나오셨네// 다 나왔네/ 다 나오셨네/ 혹에 나오지 못하였거든/ 집집마다 뜻을 걸고/ 일터에도 막을 걸었네.” (고은, ‘다 나오셨네’ 중에서)
“아빠의 어깨 위에 무등을 탄 다섯 살배기/ 희망이가 움켜쥔 촛불을/ 유모차를 타고 엄마의 촛불을 따라나선/ 저 아기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탄핵, 하야라고 당당히 외치는/ 5학년 초등학생의 카랑한 목소리를.” (문창길 ‘광화문 촛불’ 중에서)
광화문을 가득 채운 외침 가운데 유독 많았던 것이 ‘이게 나라냐’는 자괴감 섞인 탄식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박노해 시인은 ‘이게 나라다’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정의 실현과 공정 확보가 나라다운 나라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눈보라도 겨울바람도/ 우리들 분노와 슬픔으로 타오르는/ 마음속의 촛불은 끄지 못한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멈춰서지 않는다// 나라를 구출하자/ 정의를 지켜내자/ 공정을 쟁취하자/ 희망을 살려내자.” (박노해, ‘이게 나라다’ 중에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풍자와 조소도 빼놓을 수 없다. 2014년 4월16일의 그 ‘세월호 7시간’ 동안 있었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댜는 박 대통령을 한심하게 여기는 민심을 시에 담았다.
“대면 보고가 필요 있나요? 생글거리며 필러 정성껏 주입하는 그깟, 불편하면 거울 속 배경을 딜리트하는 얼굴 하나 달랑 들고 희한하게 기억도 깨끗하게 지우는 공주님 (…) 그나저나 공주니까 배고프면 밥은 챙겨야지, 찬 바다 먼 아이들의 죽어서도 우는 울음 들리건 말건 싹싹 밥그릇 비우는 그깟, 7시간” (손현숙,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 중에서)
시집 맨 뒤에는 촛불집회 일지와 함께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 중 확인 가능한 6367명의 명단이 수록됐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문화예술인은 9400여명으로 무려 1만명에 육박한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51)·김종덕(59)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56)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5명을 구속했다. 이번에 시집을 판매하고 남은 수익금 일부는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세월호 참사 추모사업과 문화예술인 권리증진 사업에 쓰인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