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면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들 사건은 필자가 항상 걱정하는 ‘사대주의·식민주의·마르크스주의’의 올가미에 걸려든 전형이다. 여기서 희생당하는 것은 항상 역사적 현재와 주체의 상실이다. 문제는 이들이 매우 역설적으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양 이념의 탈을 쓰고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중국을 제 발로 찾아가서 자신들이 사드 배치 반대세력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그것도 중국 당국자를 만나는 행보를 보였다. 당 지도부는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 표를 의식하고 있지만 내심 사드 배치 반대의 입장에 서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 중국 당국은 기세가 올라 경제관세 보복을 하면서 옛날 사대를 받던 고자세를 돌아가 한국의 내우외환을 통해 자신들의 국가이익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소녀상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위안부·소녀상 문제는 아직도 한국인이 일제식민지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한·일 간의 미래 발전을 도모해야 할 역사적 시점에서 과거의 원한과 분노를 자극하고 국가를 혼란에 빠뜨려 우리가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이는 역사를 과거의 기억과 분노에 맡기고 주체적 반성 없이 남(일제) 탓으로 돌리는 발상일 뿐만 아니라, 지나간 역사를 심판하고자 하는 역사적 실천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국가 간의 전쟁에서 패한 백성(국민)은 옛날에는 노예가 되었지만, 요즘에는 전쟁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함께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전리품으로는 흔히 국보나 보물, 여성이 그 대상이 되어왔다. 나라를 잃으면 여성의 인권이 가장 빨리 무너지고 황폐화되곤 했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위안부는 바로 좋은 예이다.
임진왜란은 흔히 ‘문화전쟁’ 혹은 ‘조선 문화약탈전쟁’이라고 불리웠고, 수많은 조선의 도공들과 부녀자들이 끌려갔다. 조선과 일본의 문화능력이 역전된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해서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는 인조로 하여금 신하의 나라임을 공표케 하는 ‘삼전도비’(사적 101호)를 세우게 하고, 조선의 부녀 수천명을 줄줄이 꿰어 데리고 갔다.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무엇을 하였던가. 청나라에서 온갖 수모를 겪고 탈출해 돌아온 부녀자들을 환향녀(還鄕女: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고 매도하면서 자결하도록 방치했다. 서방질한 여자를 지칭하는 ‘화냥×’이라는 말은 그 환향녀의 전음이다. 조선의 위선적인 선비들과 남자들은 그렇게 무책임했다. 일제식민지 시기는 나라마저 없어졌으니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의 한가운데에서 박 대통령 패러디 누드화를 전시한 행사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있었다. 전직 경찰관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기획한 시국비판 풍자전시회 ‘곧, 바이展’에 출품된 누드화 ‘더러운 잠’은 그야말로 심리적으로 여성비하와 인권유린의 극치를 연출하고 있다. 내분하고 있는 한국에서 벌어진 여성비하의 사도마조히즘의 막장 드라마이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이 작품은 박 대통령의 잠든 나체를 중심으로 최순실과 세월호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박 대통령의 복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사진과 사드 미사일, 진돗개 두 마리가 있고, 최순실은 주사기 다발을 들고 있고, 그 너머로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가 있다. 이 자학적인 풍자화는 실은 탄핵을 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층심리를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사드는 일부 지식권력 엘리트들의 되살아난 사대주의를 상징하고, 소녀상은 당쟁의 결과로 식민지가 된 한민족의 악순환의 식민지콤플렉스를 상징하고, 대통령 풍자 누드화는 국가해체의 해방구를 연상케 한다. 이들 모두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없는 한국 남성권력의 자기 부정적·분열적 모습이라는 공통성이 있다.
사대주의·식민주의·마르크스주의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악은 항상 선과 정의를 위장하면서 자신의 악을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는 특징이 있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