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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64·사진) 헌법재판소장이 헌법재판관으로서 6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순간까지 ‘탄핵심판의 조속한 결정 선고’를 당부했다. 2013년 4월12일 5대 헌재소장으로 취임한 그는 초대 조규광(1988∼1994), 2대 김용준(1994∼2000), 3대 윤영철(2000∼2006), 4대 이강국(2007∼2013) 등 역대 헌재소장 임기(6년)보다 짧은 3년9개월가량 재직했지만 2011년 2월1일 시작한 재판관 임기가 6년을 꽉 채워 이날 퇴임했다.
◆“어려운 책무 넘기고 떠나 마음 무거워”
박 헌재소장은 퇴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공정하고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이제 남은 분들에게 어려운 책무를 부득이 넘기고 떠나게 되어 마음이 매우 무겁다”고 말했다. 당장 2월1일부터는 재판관 중 가장 선임인 이정미(55) 재판관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아 심판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그는 “세계의 정치와 경제질서의 격변 속에서 대통령의 직무정지 상태가 벌써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의 중대성에 비춰 조속히 이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며 “남아 있는 동료 재판관 등 여러 헌재 구성원들이 각고의 노력을 다해 사건의 실체와 헌법·법률 위배 여부를 엄격하게 심사함으로써 헌재가 최종적인 헌법 수호자 역할을 다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박 헌재소장은 조기 대선 실시와 맞물려 국민적 화두로 떠오른 개헌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우리 헌법 질서에 극단적 대립을 초래하는 제도적·구조적 문제가 있다면, 지혜를 모아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는 말로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변화가 필요함을 인정했다. 다만 그는 “헌법 개정은 결코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인간 존엄, 국민 행복과 국가 안녕을 더욱 보장하고 실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해 권력구조 못지않게 기본권 조항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개헌 추진은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놓고 오래 다퉈 온 헌재와 대법원의 통합 또는 우열 확정에 관한 논의를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다. 박 헌재소장은 “ 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해 헌재가 수행해야 할 역할과 비중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해졌다”는 말로 헌재·대법원 통합 또는 헌재의 권한 약화는 논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통진당 해산·간통죄 위헌 등 기념비적 결정
박 헌재소장은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거쳐 1981년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한 뒤 검사로 임용돼 서울중앙지검 3차장,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대검찰청 공안부장, 대구지검장 등을 지냈다. 2010년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그해 연말 행정부 몫 헌법재판관에 지명됐다.
그는 재판관으로 2년 넘게 재직하고 헌재소장에 임명됐는데 현직 재판관이 헌재소장으로 승진한 것도, 검사 출신이 헌재소장에 오른 것도 모두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법조계 안팎에는 전임자인 이강국 전 헌재소장이 그를 헌재소장 적임자로 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헌재소장은 대외활동도 왕성하게 펼쳐 2014년 9월 ‘헌법재판과 사회통합’을 주제로 전 세계 109개 헌법재판기관 대표 등이 참가한 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총회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최근에는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AACC)의 상설연구사무국을 서울에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서울시립대는 그가 헌재소장으로 재직하며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기여하고 AACC 주도 등 국제적 활동으로 국위선양에 앞장선 점을 기려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그는 이날 퇴임사에서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경제불평등, 양극화 등으로 인하여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사회적 갈등 해소와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길을 모색했다”고 지난 6년간을 자평한 뒤 “앞으로도 ‘헌법’, ‘국민’, ‘역사’라는 세 가지 거울을 항상 가슴에 지니고 결코 부끄러움이 없는 헌재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미래를 축원했다.
김태훈·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