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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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신라의 조각명장 양지 스님

신라의 대표적 예술가를 꼽자면 서예가 김생, 화가 솔거, 음악가 백결, 그리고 조각가 양지 스님이 있다. 삼국유사 제4권 의해 제5 양지사석(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 良志使錫)조는 신통력과 함께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던 신라 승려 양지의 이야기이다.

조상도 고향도 알려지지 않은 한 승려가 13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의 걸출한 예술 세계와 더불어 작품으로 알려진 우수한 불상들 때문일 것이다. 영묘사의 장육삼존상과 천왕상 및 전탑의 기와, 천왕사 탑 아래 팔부신장상, 법림사의 주불삼존과 좌우 금강신상 등 약 5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에서부터 20~30㎝의 작은 기와까지, 이토록 다양한 걸작이 모두 양지 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빗대어 ‘이탈리아에는 미켈란젤로, 신라에는 양지 스님’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 그 종횡무진의 예술 세계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녹유신장벽전
삼국유사 양지사석조에는 양지 스님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가 영묘사의 불상을 만들 때 도성 안의 남녀들이 함께 불상의 재료가 되는 진흙을 날랐다고 한다. 그때 부르던 노래가 향가로 전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풍요’라는 향가이다. “오다 오다 오다/슬픔 많아라/슬픔 많은 우리 무리여/공덕 닦으러 오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경주 사람들은 방아를 찧거나 다른 일을 할 때도 줄곧 이 노래를 불러왔는데, 이 역시 양지 스님의 행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6~2012년 신라 호국사찰 사천왕사 터를 발굴하였다. 그리고 양지 스님의 작품으로 알려진 녹유벽전의 여러 조각을 수습하였으며, 3종류의 벽전을 모두 복원하여 2015년 이를 기념하는 양지사석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박윤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