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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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도깨비 김신과 잔다르크

발렌타인데이를 빛낼 '팬지꽃' 와인 팡세의 꽃말은?

야트마한 언덕을 끼고 끝없이 이어진 아름다운 샛강과 서서히 떠오르는 여명. 그리고 샛강 주변을 따라 펼쳐진 고풍스런운 성들. 루아르(Loire)는 ‘프랑스의 정원’으로 불릴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합니다. 프랑스에는 고성이 5000여개가 있는데 과거 왕족의 여름 휴양지로 유명했던 루아르에만 80개가 몰려 있여 ‘고성 투어’로도 유명한 곳이지요. 길이 1012km로 프랑스에서 가장 긴 루아르 강의 중앙부분인 루아르 밸리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랍니다. 

시농성 전경 출처=www.chinon-valdeloire.com
루아르에서도 중심에 있는 시농(Chinon)은 프랑스의 전쟁 영웅 잔다르크의 숨결로 가득한 곳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백년전쟁(1337∼1453) 말기이던 1429년 3월 8일. 어린 소녀 잔다르크는 대관식도 치르지 못하고 시농성에 도피해있던 프랑스 왕 샤를 7세를 어렵게 찾아가지요. 그는 그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왕을 설득했고 결국 군대를 일으켜 영국군이 포위하고 있던 오를레앙과 랭스를 되찾아 샤를 7세가 정식으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잔다르크 작자미상 Public domain
하지만 잔다르크는 샤를 7세의 배신으로 19살, 꽃다운 나이에 처형당하고 말지요. 잔다르크는 영국군의 완전 축출을 주장했지만 왕위에 올라 안이해진 샤를 7세는 이를 듣지 않았고 귀족들도 영웅으로 부상한 잔다르크를 시기하게 됩니다. 결국 영국은 1년 뒤 프랑스를 재공격했고 아무런 도움없이 전쟁터에 나선 잔다르크는 영국과 동맹한 부르고뉴 군대에 그만 붙잡힙니다. 부르고뉴는 몸값을 받고 영국에 잔다르크 팔아 넘깁니다. 영국은 샤를 7세에 잔다르크 몸값으로 거액을 요구했지만 샤를 7세는 이에 응하지 않고 잔다르크를 철저하게 버립니다. 결국 잔다르크는 마녀로 몰려 화형되고 맙니다 .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도깨비에서 주인공 김신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며 명성이 높아지자 간신 박중헌의 이간질로 왕인 왕여가 김신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스토리와 거의 흡사하군요.  

이런 잔다르크의 역사와 함께 루아르를 빛나게 하는 또 하나는 와인입니다. 루아르의 와인역사는 2000년이 넘는데 루아르 밸리는 보르드, 부르고뉴 등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 산지입니다. 화이트 와인 비중이 56%로 상세르, 푸이 퓌메 지역에서 만든 소비뇽 블랑 100% 와인이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대표적인 레드와인 생산지로는 시농, 부르게이(Bourgueil), 소뮈르(Saumur), 앙주(Anjou)가 꼽힙니다. 이중 시농은 프랑스의 유명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가 직접 포도밭을 소유할 정도의 고급와인 생산지로 평가받는 곳이랍니다.

시농을 비롯한 루아르 와인 생산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레드 품종 카베르네 프랑만 사용한 독특한 와인을 만들어 왔습니다. 사실 카베르네 프랑은 보르도 등에서 주로 보조 품종으로 쓰여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품종이지요. 이런 품종 100%로 와인을 빚는 이유는 시농에서 가장 품질 좋은 카베르네 프랑이 생산되기 때문이랍니다. 이 품종은 풋풋한 산딸기, 민트 등 허브향, 연필 냄새와 함께 가볍고 신선한 산미가 느껴집니다. 또 강한 듯하지만 우아한 아로마가 특징이지요.

레 팡세 드 팔루스(Les Pensees de Pallus)
시농을 대표하는 와인 중 하나가 도멘 드 팔루스(Domaine de Pallus)가 빚는 레 팡세 드 팔루스(Les Pensees de Pallus·사진)랍니다. 수르대(Sourdais) 가문이 1891년부터 시농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와인을 빚었는데 1985년 전문적인 와이너리로 탈바꿈해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팬지꽃이 그려진 레 팡세 드 팔루스 출처=와인서처닷컴 www.wine-searcher.com
와인 이름 중 ‘팡세’는 도멘 드 팔루스의 포도밭 근처에 핀 팬지꽃을 의미합니다. 레이블에 연분홍 팬지가 그려져 있는데 팬지의 꽃말은 “날 항상 기억해 주세요”라는 뜻이라 연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발렌타인데이에 잘 어울리는 와인입니다. 특히 이 와인은 첫 맛은 약간 싱거울 정도로 가볍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깊고 풍부한 꽃향이 피어나는 독특한 풍미가 특징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사랑이 상대방에 잘 전달될 것 같네요.  

 부르고뉴를 연상하는 꽃향기와 떼루아의 흙 냄새 뉘앙스가 이어지는 이 와인은 연간 3만5000병 정도만 생산됩니다. 자신의 떼루아를 완벽히 이해한 천재 와인메이커 베트랑 수르대(Bertrand Sourdais)가 변화무쌍한 빈티지를 지닌 루아르 지역에서 우수한 시농의 떼루아와 카베르네 프랑의 특징을 완벽하게 담은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도멘 드 팔루스 오너이나 와인메이커 베트랑 수르대 출처=홈페이지
베트랑은 1996년 보르도 메독의 블랑크포 와인전문 학교에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샤토 무통 로칠드와 레오빌 라스카스, 칠레 와이너리들을 거치며 양조를 공부합니다. 그는 이어 스페인으로 건너가 친구 미구엘 산체즈와 함께 와이너리 도미니오 데 아타우타 (Dominio de Atauta)을 설립, 최고의 스페인 와이너리로 키웠습니다. 그는 2004년 자기 고향 시농으로 돌아와 자신의 첫 번째 빈티지를 만들게 됩니다. 베트랑은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언론에 프랑스 와인의 미래를 이끌어갈 천재 양조가로 평가받고 있다는 군요.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