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유니폼 넘버, 35번의 주인공…②필 니크로, 너크볼 하나로 318승 따낸 대투수
▲ 40세 이후 121승, 35세 이후 208승 신화
필 니크로(1939년 4월 1일생)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너크볼 투수이다.
너클볼 투수는 자신이 던지는 구종 중 70% 이상을 너크볼을 던지는 투수를 말한다.
니크로는 25살때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48살에 은퇴할 때까지 24시즌 동안 318승 274패 방어율 3.35, 5404 1/3이닝, 삼진 3342개의 엄청난 기록을 올렸다.
승수로는 역대 16위, 탈삼진 역대 11위로 수많은 타자들이 니크로 앞에서 춤만 추다가 돌아섰다.
▲ 너크볼 방향, 던지는 투수도 몰라 짐작만 할 뿐
너크볼은 손톱을 튕겨내는 힘으로 던지기에 악력(손가락힘)과 손목을 이용해 던지는 보통의 볼에 비해 회전도 적고 방향도 반대이다.
그런만큼 공기의 저항도 상대적으로 많이 받아 느린데다 밑으로 떨어지는 하지만 얼만큼 떨어질지, 옆으로 어떻게 휘어져 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너크볼러도 볼흐름을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니 이를 받아내는 캐처는 죽을 맛이다.
툭하면 알까기, 에러를 범했다는 누명을 쓰게 마련이다. 오랜 포구 연습과 너크볼 투수와 호흡을 맞춰야만 가능하다.
▲ 타자들은 눈감고 운에 맡긴 채 스윙
타자들은 너크볼이 변화가 심하고 속도까지 제각각이어서 미리 짐작해 치기도 그렇다고 노려서 치기도 애매하고 어렵다.
공의 궤적에 따라 춤을 출 뿐이다.
너크볼은 훌륭한 무기이지만 나름의 컨트롤과 몇몇 구종의 볼을 보완무기로 가지고 있어야 효용가치가 높다.
거의 매번 스트라이크 존을 형편없이 벗어난다면 모든 타자가 기다리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 너크볼을 던졌기에 화려한 노년(?)을 보내
일반적으로 투수들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린 뒤 30대 중반이후 쇠퇴기에 접어든다.
하지만 니크로는 자신이 쌓은 318승 중 2/3에 해당하는 208승을 투수나이 환갑이라는 35세 이후에 기록, 35세 이후 승수만 따질 때 역대 1위 자리를 궤찼다.
특히 만 47세였던 1986년 두자릿수 승수(11승) 기록과 40세 이후 기록한 121승은 앞으로도 깨어지지 힘든 위대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화련한 노년을 보내게 된 것은 공의 구속에 큰 영향을 받지않는 너클볼 특징 때문이다.
강속구 투수들은 손목과 어깨에 과도한 부담을 늘 달고 산다. 반면 너크볼러는 자연스럽게 뿌리기만 하면 된다.
상대적으로 롱런이 가능하고 20대 때는 40대 때는 볼 스피드는 별반 차이가 없게 마련이다.
▲ 오랜 연마끝에 명품 너크볼과 견제능력으로 스타로 발돋움
필은 어린시절 광부였던 아버지로부터 너크볼을 배웠다.
이후 줄기차게 너크볼만 던졌다. 조롱거리가 되고 패대기 투구가 나오기 일쑤였지만 마이너리그 생활 10년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다듬고 또 다듬었다.
나름의 컨트롤과 타자심리, 여기에 너크볼 투수 약점을 보완하는 능력까지 닦았다.
너크볼 투수의 약점 중 하나가 구속이 늦고 방향이 제각각이어서 루상에 나간 주자들의 도루를 막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필은 주자를 루에 묶어 놓는 견제 훈련에 매달려 달인의 경지에 올라 쉽게 도루를 허용치 않았다.
▲ 각종 최고령 투수 기록
니크로는 뉴욕 양키스시절이던 1985년 10월 6일 만 46세 188일로 완봉승, 1952년 전설의 흑인투수 사첼 페이지가 세웠던 최고령 완봉승투수 기록(만 45세 11개월)을 33년만에 경신했다.
이 기록은 2010년 5월 8일 만 47세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제이미 모이어에 의해 깨졌지만 대단한 위업이다.
니크로는 만 43세가 넘은 1982, 1984, 1985시즌 등 3차례나 190이닝 이상 던져 15승 이상을 올렸다 .
만 43세 이상 투수가 이런 기록(190이닝 이상 투구, 15승 이상)을 세운 것은 잭 퀸(1927시즌) 제이미 모이어(2008시즌)에 이어 니크로 뿐이다.
그 것도 3차례나.
▲ 너크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4명 중 최다승
너크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중심으로 움직이면 그만큼 위력적인 구종도 드물다.
앞서 말했듯이 문제는 정밀도. 대부분이 마치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처럼 보여 효용가치가 없다.
이런 까닭에 강속구 투수와 달리 너크볼로 입지를 굳힌 이는 드물다.
너크볼러 중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이는 제시 헤인스, 테드 라이언스, 호이트 빌헬름, 필 니크로 등 지금까지 4명 뿐이다.
이중 필 니크로는 승수와 탈삼진, 리그 전체에 끼친 영향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 기록
*통산 318승(역대 16위) *통산 탈삼진 3342(역대 11위) *올스타 5회
*골드 글러브 5회 *다승왕 2회 *방어율 1위 1회
*삼진왕 1회 *노히트 노런 1회 *클레멘테상 수상(1980년)
*명예의 전당 멤버(1997년 5회 도전끝에) *35번 영구결번(애틀랜타 브레이브스)
318승 274패 방어율 3.35, 5404 1/3이닝, 삼진 3342개
▲ 동생 조 니크로와 통산 539승 합작
필 니크로는 동생 조(통산 221승)와 함께 통산 539승을 합작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들 형제보다 더 많이 승수를 따낸 형제는 없다.
동생 조 니크는 아버지와 형에게 너클볼을 배워 최정상급 투수의 기준점인 200승 투수 반열에 올랐다.
▲ 한시즌 다승1위와 최다패 1위 동시에 달성(?)
필 니크로는 1979시즌 21승 20패를 기록했다.
동생 조와 함께 다승부문 공동1위에 올랐지만 최다패 1위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같은 투수가 다승 1위와 최다패 1위를 차지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전설이다.
▲ 계약금 250달러에 감격했던 병상의 광부 아버지 위해 나선 300승째 경기, 단 한타자에게만 너크볼 던지면서 완봉승
언젠가 필 니크로는 1958년 밀워키 브레이브스(1966년 애틀랜타로 연고지 이전) 스카우트가 광부 아버지에게 "계약금 250달러, 어떻게 생각하는지"라고 묻자 "우린 가난해서 그만큼의 돈이~"라며 당황했었다는 시절을 회상한 바 있다.
아들에게 너크볼을 가르쳐 줬던 광부 아버지는 아들이 메이저리그 스타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필은 1985시즌 막바지 아버지가 위독하자 10월 6일 시즌 마지막 경기를 포기하고 고향집으로 달려가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만류, 필 니크로는 "마지막 타자를 상대할 때까지 너크볼을 단 1개도 던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너크볼만 갖고 성공한 이상한 존재"라는 일부 시선에 대해 너크볼은 자신이 갖고 있는 구종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증명함과 함께 야구를 가르쳐 준 아버지에게 존경의 표시였다.
그의 말대로 마지막 타자를 상대할 때까지 단 1개의 너크볼도 던지지 않고 완봉승했다.
이 경기가 바로 사첼 페이지의 최고령 완봉승 기록을 갈아치운 역사적 게임이었다.
300승 달성 경기를 완봉으로 장식한 것은 지금까지 필 니크로가 유일하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 40세 이후 121승, 35세 이후 208승 신화
필 니크로(1939년 4월 1일생)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너크볼 투수이다.
너클볼 투수는 자신이 던지는 구종 중 70% 이상을 너크볼을 던지는 투수를 말한다.
니크로는 25살때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48살에 은퇴할 때까지 24시즌 동안 318승 274패 방어율 3.35, 5404 1/3이닝, 삼진 3342개의 엄청난 기록을 올렸다.
승수로는 역대 16위, 탈삼진 역대 11위로 수많은 타자들이 니크로 앞에서 춤만 추다가 돌아섰다.
▲ 너크볼 방향, 던지는 투수도 몰라 짐작만 할 뿐
너크볼은 손톱을 튕겨내는 힘으로 던지기에 악력(손가락힘)과 손목을 이용해 던지는 보통의 볼에 비해 회전도 적고 방향도 반대이다.
그런만큼 공기의 저항도 상대적으로 많이 받아 느린데다 밑으로 떨어지는 하지만 얼만큼 떨어질지, 옆으로 어떻게 휘어져 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너크볼러도 볼흐름을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니 이를 받아내는 캐처는 죽을 맛이다.
툭하면 알까기, 에러를 범했다는 누명을 쓰게 마련이다. 오랜 포구 연습과 너크볼 투수와 호흡을 맞춰야만 가능하다.
▲ 타자들은 눈감고 운에 맡긴 채 스윙
타자들은 너크볼이 변화가 심하고 속도까지 제각각이어서 미리 짐작해 치기도 그렇다고 노려서 치기도 애매하고 어렵다.
공의 궤적에 따라 춤을 출 뿐이다.
너크볼은 훌륭한 무기이지만 나름의 컨트롤과 몇몇 구종의 볼을 보완무기로 가지고 있어야 효용가치가 높다.
거의 매번 스트라이크 존을 형편없이 벗어난다면 모든 타자가 기다리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 너크볼을 던졌기에 화려한 노년(?)을 보내
일반적으로 투수들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린 뒤 30대 중반이후 쇠퇴기에 접어든다.
하지만 니크로는 자신이 쌓은 318승 중 2/3에 해당하는 208승을 투수나이 환갑이라는 35세 이후에 기록, 35세 이후 승수만 따질 때 역대 1위 자리를 궤찼다.
특히 만 47세였던 1986년 두자릿수 승수(11승) 기록과 40세 이후 기록한 121승은 앞으로도 깨어지지 힘든 위대한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화련한 노년을 보내게 된 것은 공의 구속에 큰 영향을 받지않는 너클볼 특징 때문이다.
강속구 투수들은 손목과 어깨에 과도한 부담을 늘 달고 산다. 반면 너크볼러는 자연스럽게 뿌리기만 하면 된다.
상대적으로 롱런이 가능하고 20대 때는 40대 때는 볼 스피드는 별반 차이가 없게 마련이다.
▲ 오랜 연마끝에 명품 너크볼과 견제능력으로 스타로 발돋움
필은 어린시절 광부였던 아버지로부터 너크볼을 배웠다.
이후 줄기차게 너크볼만 던졌다. 조롱거리가 되고 패대기 투구가 나오기 일쑤였지만 마이너리그 생활 10년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다듬고 또 다듬었다.
나름의 컨트롤과 타자심리, 여기에 너크볼 투수 약점을 보완하는 능력까지 닦았다.
너크볼 투수의 약점 중 하나가 구속이 늦고 방향이 제각각이어서 루상에 나간 주자들의 도루를 막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필은 주자를 루에 묶어 놓는 견제 훈련에 매달려 달인의 경지에 올라 쉽게 도루를 허용치 않았다.
▲ 각종 최고령 투수 기록
니크로는 뉴욕 양키스시절이던 1985년 10월 6일 만 46세 188일로 완봉승, 1952년 전설의 흑인투수 사첼 페이지가 세웠던 최고령 완봉승투수 기록(만 45세 11개월)을 33년만에 경신했다.
이 기록은 2010년 5월 8일 만 47세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제이미 모이어에 의해 깨졌지만 대단한 위업이다.
니크로는 만 43세가 넘은 1982, 1984, 1985시즌 등 3차례나 190이닝 이상 던져 15승 이상을 올렸다 .
만 43세 이상 투수가 이런 기록(190이닝 이상 투구, 15승 이상)을 세운 것은 잭 퀸(1927시즌) 제이미 모이어(2008시즌)에 이어 니크로 뿐이다.
그 것도 3차례나.
▲ 너크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4명 중 최다승
너크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중심으로 움직이면 그만큼 위력적인 구종도 드물다.
앞서 말했듯이 문제는 정밀도. 대부분이 마치 아무렇게나 던지는 것처럼 보여 효용가치가 없다.
이런 까닭에 강속구 투수와 달리 너크볼로 입지를 굳힌 이는 드물다.
너크볼러 중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이는 제시 헤인스, 테드 라이언스, 호이트 빌헬름, 필 니크로 등 지금까지 4명 뿐이다.
이중 필 니크로는 승수와 탈삼진, 리그 전체에 끼친 영향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 기록
*통산 318승(역대 16위) *통산 탈삼진 3342(역대 11위) *올스타 5회
*골드 글러브 5회 *다승왕 2회 *방어율 1위 1회
*삼진왕 1회 *노히트 노런 1회 *클레멘테상 수상(1980년)
*명예의 전당 멤버(1997년 5회 도전끝에) *35번 영구결번(애틀랜타 브레이브스)
318승 274패 방어율 3.35, 5404 1/3이닝, 삼진 3342개
▲ 동생 조 니크로와 통산 539승 합작
필 니크로는 동생 조(통산 221승)와 함께 통산 539승을 합작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이들 형제보다 더 많이 승수를 따낸 형제는 없다.
동생 조 니크는 아버지와 형에게 너클볼을 배워 최정상급 투수의 기준점인 200승 투수 반열에 올랐다.
▲ 한시즌 다승1위와 최다패 1위 동시에 달성(?)
필 니크로는 1979시즌 21승 20패를 기록했다.
동생 조와 함께 다승부문 공동1위에 올랐지만 최다패 1위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같은 투수가 다승 1위와 최다패 1위를 차지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전설이다.
▲ 계약금 250달러에 감격했던 병상의 광부 아버지 위해 나선 300승째 경기, 단 한타자에게만 너크볼 던지면서 완봉승
언젠가 필 니크로는 1958년 밀워키 브레이브스(1966년 애틀랜타로 연고지 이전) 스카우트가 광부 아버지에게 "계약금 250달러, 어떻게 생각하는지"라고 묻자 "우린 가난해서 그만큼의 돈이~"라며 당황했었다는 시절을 회상한 바 있다.
아들에게 너크볼을 가르쳐 줬던 광부 아버지는 아들이 메이저리그 스타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필은 1985시즌 막바지 아버지가 위독하자 10월 6일 시즌 마지막 경기를 포기하고 고향집으로 달려가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만류, 필 니크로는 "마지막 타자를 상대할 때까지 너크볼을 단 1개도 던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너크볼만 갖고 성공한 이상한 존재"라는 일부 시선에 대해 너크볼은 자신이 갖고 있는 구종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증명함과 함께 야구를 가르쳐 준 아버지에게 존경의 표시였다.
그의 말대로 마지막 타자를 상대할 때까지 단 1개의 너크볼도 던지지 않고 완봉승했다.
이 경기가 바로 사첼 페이지의 최고령 완봉승 기록을 갈아치운 역사적 게임이었다.
300승 달성 경기를 완봉으로 장식한 것은 지금까지 필 니크로가 유일하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