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국무부는 ‘브리핑 없는 날’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34일째인 22일(현지시간)까지 국무부 브리핑은 없었다. 트럼프 정부 들어 반이민 행정명령 발동에 따른 국제사회의 우려를 포함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하나의 중국 정책’ 기조 혼란, 멕시코와의 외교 갈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 혼선에도 국무부는 특별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언론의 단독보도와 추측성 보도가 이어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반박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은 틸러슨 장관의 동정마저 국무부에서 듣지 못하곤 했다. 국무장관이나 국무부를 취재원으로 하는 고급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틸러슨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의 통화 관련 보도는 러시아 외교부를 통해 나온 것이었다. 국무부는 관련 통화 사실과 내용을 묻는 미 언론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멕시코 간 틸러슨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22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해 로버타 제이컵슨 멕시코 주재 미국 대사의 영접을 받고 있다.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과 함께 멕시코를 방문한 그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 만나 국경 장벽 건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 양국 현안을 논의한다. 멕시코시티=AFP연합뉴스 |
국무부의 침묵에는 구조적인 상황과 의도적인 원인이 동시에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틸러슨 장관 임명 이후에도 외교정책 실무라인의 핵심 축인 부장관, 차관, 차관보 등 고위직이 공석이라는 점이 꼽힌다. 틸러슨 장관이 석유회사에서만 40년 넘게 근무해 외교 전문지식을 쌓으려면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점도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무부의 브리핑 회피를 트럼프 대통령과 연관해 해석하는 기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현안에 대해 강경발언을 내놓으면서 외교사령탑이 최고통치권자와 의견충돌을 빚지 않고 상대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포석의 일환이라는 이야기다. 일례로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미·멕시코 사이의 난기류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틸러슨 장관의 침묵은 오히려 미국 외교의 부담을 덜게 한다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