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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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재난 대응 민간 역할 키워 지속적 활동 토대 마련할 것”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바람, 안개, 눈, 비, 해류, 암초, 수많은 선박 등을 뚫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항해하는 뱃사람이 갖춰야 할 혜안을 ‘Seaman’s Eye’라고 한다. 국민안전처 직원들도 대한민국호(號)의 사관으로서 전문지식과 경계심, 준비성, 판단력 등 ‘Safety Eye’를 가져야 한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28일 ‘안전 대한민국’을 위해 안전처 구성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로 ‘Safety Eye’를 꼽았다. 박 장관은 그러면서 “국민 안전에 ‘완급’은 있지만 ‘경중’은 없다”고 강조했다.

해군 제독에서 대학 교수, 국민안전처 초대 장관까지…. 그리고 어느새 2년3개월이 훌쩍 지났다. 안전의식 자체가 메말라 있던 ‘안전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안전이라는 가치를 끌어내기에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어수선한 정국 속에 경주 지진, 전통시장 화재, 각종 가축전염병 등 대형 재난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안전처를 향한 국민의 격려도 있었지만 비난도 많았다. 박 장관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안전을 고민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한다”며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과 관련한 예산 부족과 정부의 인식 부재 등 현실적인 한계에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는 “나랏일은 욕을 먹더라도 꿋꿋하게 해나가야 하는데 국민의 관심이 가는 대로만 하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생긴다”며 안전을 둘러싼 포퓰리즘을 경계했다. 박 장관의 인터뷰는 28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28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혹시 모를 북한의 화생방 테러나 지진, 고층빌딩 화재, 가축전염병 등과 관련한 대처방안과 과제를 설명하고 있다.
국민안전처 제공

―어느새 국민안전처가 창설 3년차를 맞았다.

“벌써 아련하다. 안전처 출범 하루 전인 2014년 11월18일에 (장관 임명) 연락을 받은 뒤부터는 정신없이 지냈다. 2년간 재난안전 총괄 조정기능과 현장 대응역량 강화 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재난안전 관리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아직까지 국민이 안전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올해는 좀 더 안전을 체감할 수 있도록 마련된 추진 과제가 있나.

“올해는 재난을 관리해야 하는 모든 기관, 기업, 단체들의 재난안전관리역량을 높임으로써 지속가능한 안전생태계를 만들고 국민이 안전을 체감할 수 있도록 하겠다. 먼저 정부 부처 간 긴밀한 협업, 소방·해경과 같은 긴급구조기관의 현장대응능력, 안전관리의 1차적인 책무가 있는 지자체의 재난대응 능력·책임성 강화 등에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국민·민간단체·기업의 참여 확대로 일상생활에 안전문화를 뿌리내리도록 함으로써 재난안전 분야에서 민간의 역할을 키우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치겠다. 특히 오는 5월30일부터 국민 안전교육 진흥 기본법이 시행된다. 안전문화운동이 가장 큰 테마가 될 것이다. 그동안 홍보와 캠페인에 치우쳐 효과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가정, 학교, 직장에서 일상업무를 하면서도 안전점검·안전교육·안전신고가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 3∼6월 대전시, 세종시와 안전문화운동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바탕으로 안전문화운동 표준매뉴얼을 작성하고 하반기에는 전국으로 확대하겠다.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안전문화운동이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드린다.”

―지난해 9월 경주 지진이 1978년 지진 관측 이후 최대 규모였다. 국민의 우려가 크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져 왔다. 9·12 경주 지진을 계기로 잠재적 위험이었던 지진이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경주 지진 전인 지난해 5월 지진방재 개선대책을 내놓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긴급재난문자 발송 지연, 국민행동요령 홍보 미흡, 지진연구 부족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현행법상 지진을 관리하는 기관이 국민안전처인데도 지난해 관련 예산이 10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기존 대책은 법·제도 정비 위주이고 예산투자나 연구가 미흡했다. 이에 기존 지진방재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 중이다. 올해 예산도 178억원 정도로 대폭 늘렸다. 지금까지 기상청에서 통보받아 국민안전처가 했던 긴급재난문자 발송을 기상청으로 일원화했다. 내년까지 기상청의 지진 관측망을 확대해 지진조기경보시스템이 구축된다. 이렇게 되면 지진관측에서 긴급재난문자 발송까지 시간이 현재 50초에서 25초, 2020년에는 10초 이내로 단축될 것이다. 지진 발생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한다. 원인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일본은 단층 하나 조사하는 데 약 1억엔, 우리 돈으로 10억원 이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 등이 몰려 있는 동남권을 중심으로 기상청, 미래부 등과 이 지역 단층대 조사를 2020년까지 진행한다. 이후에는 전국 450여개 단층 조사를 순차적으로 할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유난히 전통시장이나 초고층건물 화재와 같은 대형 화재가 많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달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로 4명의 희생자가 발생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대구 서문시장, 전남 여수 수산시장 화재로 피해와 상심이 큰 상인들께 위로를 전한다. 초고층 건축물 화재는 다수의 인명피해가 수반되는 등 사회적 파장이 막대한 만큼 국민안전처는 각종 시책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상시에도 2시간 이상 이용할 수 있는 피난용 승강기와 건축물 중간에 30층마다 1개소 이상 설치해야 하는 피난안전구역, 재난 시 자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종합방재실을 구축도록 하고 있다. 재난대응 인프라뿐만 아니라 재난예방에 필요한 안전점검을 엄정하게 실시하는 한편, 건물 관리자가 스스로 안전에 신경쓸 수 있도록 총괄재난관리자 교육이수, 겸직금지 의무화, 종합방재실 설치기준 강화와 같은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앞으로도 초고층건축물의 점검과 훈련을 강화하고 미비점이나 사각지대가 발생하면 최우선적으로 개선하겠다. 전통시장은 대부분 자생적으로 생겨나 건축, 전기, 가스, 소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안전관리에 문제점을 안고 있다. 최근 5년간 전통시장 화재는 356건으로 매월 5∼6건꼴로 일어난 이유다. 이로 인해 1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으며, 재산피해도 486억원에 이른다. 전통시장은 특성상 한 점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인접점포로 쉽게 확대되므로 예방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 올해 1577개 시장 중 점포가 1000개 이상인 대형시장 20곳은 중앙특별조사단, 나머지는 시·도 소방본부에서 합동점검을 한다. 화재에 매우 취약한 전통시장은 중소기업청과 협의해 시설 개선과 보강을 하겠다. 심야시간대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소방서에 신고되는 ‘자동화재속도설비’도 올해 중 설치한다.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상인들 간의 협력도 절실한 상황이다. 내 점포뿐 아니라 이웃점포도 화재요인이 없어야 내 점포도 안전하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등이 끊이지 않는다. 초동대처 미흡, 방역체계 부실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국민안전처의 책임도 있었다고 보는데.

“농식품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지자체 등 관계 부처들이 방역이나 조사 등을 한다. 국민안전처도 컨트롤타워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안전처가 모든 것을 지휘·통제하는 것은 아니고 할 수도 없다. 안전처는 AI나 구제역 발생 현장에서 제대로 조치가 되고 있는지, 후속 조치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체크한다. 코디네이터의 역할에 더 가깝다. 안전처는 최근 AI와 구제역에 관한 전반적인 부분들을 점검해 총 48가지 개선대책을 내놨다. 축산농장 방역관리부터 매몰지 관리, 살처분 관리, 구제역 관리 등 총 8가지 항목이다. 예를 들면 AI 확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계란수집 유통구조 개선이라든지, 구제역 관련 접종 시스템 등 제도 개선, 살처분 매몰 저장탱크의 상시 점검, 살처분 참여하는 인력의 관리 부분 등이다.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조만간 가축전염병 방역 등과 관련한 개선책을 내놓겠다.”

―대권 주자들이 정부조직 개편 구상을 내놓고 있다. 해경 부활과 맞물려 안전처도 개편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안전처 장관 입장에서는 무엇이 됐든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한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할지를 심도있게 검토해서 올곧게 가야 한다. 정치·사회적으로 어떠한 변화가 있더라도, 국민의 안전은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대권 주자들의 조직 개편 구상이 국민의 안전을 고려한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단점이 있다고 리더가 바뀐다고 해서 정부 부처를 몇 년 운영해보지도 않고 개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정리=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대담=박찬준 사회2부장

◆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경기 양주(1952년) ●경희고 ●해군사관학교(28기) ●국방대학교 안보과정 ●경남대 안보정책학과 정치학 석사 ●해군 인사참모부 부장 ●해군 제3함대사령부 사령관 ●해군 교육사령관, 작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합동참모차장 ●충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