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사변 이후 일본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장제스는 상당한 전력을 상실하고 전쟁이 끝난 뒤 다시 공산당과 대적하지만, 부패한 군대조직으로 마오쩌둥의 공산당을 대항하는 데 여러 가지 허점을 노출한다. 장제스는 200만 군사의 수장으로서 중국 대표로 카이로회담에도 참여하는 등 중국 전역에 명성을 떨치지만 대일전쟁 이후 마오쩌둥의 홍군에게 단기간에 역전 당해 타이완으로 패주하게 된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 |
본문 중 “두 달 뒤 미국은 장제스 총사령관에게 불리한 소식을 전했다. 장제스 편인 미국 공화당이 1948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하고 그들의 입장에 섰던 중국 로비단체의 활동이 트루먼을 매우 화나게 한 것이다”라는 언급이 있다. 트루먼의 민주당이 승리한 이듬해 장제스는 타이완으로 패주했다. 미 대선 과정에서 공화당에 올인한 장제스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이다.
대한민국이 출범했던 격동의 시기에 중국은 이처럼 큰 변화를 겪는다. 미국 내 정치 역학구조를 잘 알고 있었던 이승만이 없었다면 처지가 비슷했던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작가의 일방적인 생각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방대한 자료와 논문, 인터뷰를 중심으로 작성됐기에 견고하고 튼튼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장제스의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대립했던 오랜 기간 우리가 생각해야 할 많은 논점들이 이 책을 통해 뜨겁게 다가온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