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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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TK정서 1번지’ 서문시장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경상감영 서쪽 문 밖에 있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평양장·강경장과 더불어 3대 시장으로 꼽혔다. 6·25전쟁 후 대구에서 섬유산업이 일자 포목도소매상이 몰리며 현대시장의 틀을 갖췄다. 지금은 4000여개 점포에 2만여명이 장사하는 영남권 최대 시장이다. TK지역 민심을 알 수 있는 정치적 상징성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큰 화재를 입었던 서문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한다. 거리 판매대에는 밤에도 관광객이 다시 북적인다. 광복 이후 여섯 차례나 화재를 겪었지만 이번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있다.

서문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각별한 곳이다. 2004년 총선 기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민심이 흔들릴 때, 2012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밀릴 때 이곳을 찾았다. 그때마다 뜨거운 지지를 확인했고, 그 힘으로 정치적 위기를 극복했다. 재작년 9월 방문 때는 그를 연호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이 불거진 후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화재 다음날 방문하자 “왜 왔느냐”라는 냉소가 흘렀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보도에 “쇼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대통령 사진은 하나둘씩 치워졌고, 바닥에 버려지기까지 했다. 믿었던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컸다.

석 달이 흐른 지금, 분위기는 다시 바뀐 듯하다. 고영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상가번영회 간부는 “처음엔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했다고 실망했지만 이젠 대통령도 당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대통령님 힘 내세요’라고 적힌 피켓도 재등장했다.

바른정당 대선주자로 나선 남경필 경기지사는 시민들로부터 “X새끼”라는 육두문자를 들었다.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은 고향인데도 지지율이 민망할 정도다. 모두 배신자로 몰린 탓이다. 구청장을 지낸 인사는 “젊은 친구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있지만 이미 탄핵 민심의 공수는 바뀌었다”고 했다. 나라와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탄핵 여부가 일주일 내 결정된다. 서문시장 사람들과 박 대통령의 ‘애증 드라마’ 후편이 궁금해진다.

박태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