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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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검찰개혁 하려면 제대로 하자

수사·기소 분리는 보편적 기준 역행 /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여건 필요
검사들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지 않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검사제도가 있는 나라치고 검사를 좋게 말하는 나라는 별로 없는 듯하다.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고위직 검사들의 비리 사태이고, 그 결과 검찰권을 제한하자는 얘기가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요컨대, 검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하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중 일부는 경찰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사가” 라는 구호가 많이 들린다. 이 점에 대해서 몇 자 적을까 한다.

기소권까지 다 빼앗자는 주장은 별로 없는 것 같으니까, 수사권에 국한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수사권을 다른 곳에 준다고 해서 아무 국가기관에나 줄 수는 없다. 준다고 하면 법원에 주거나 아니면 경찰에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법원에 주는 것은 안 된다. 법원이 수사도 하고 재판도 하는 것을 ‘규문주의’(糾問主義)라고 하는데, 규문주의를 극복한 게 바로 근대형사소송법이다. 근대에서 다시 중세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수사권을 전부 경찰에 주고, 검사는 기소권만 유지하는 길일 것이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뉴욕주 변호사
수사란 원래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이다. 쉽게 말하면 재판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범죄 혐의를 조사하는 것을 수사라고 한다. 재판할 것도 아닌데 수사해서는 안 된다. 그건 수사가 아니라 ‘사찰’이 되고, 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속한다. 수사를 시작하는 것도, 수사를 진행하는 것도, 수사를 끝내는 것도 전부 재판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수사의 개시, 진행, 종결에 대한 결정은 재판에 들어갈 사람이 해야 한다. 일부를 경찰에 위임할 수는 있지만 본령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필요한 수사만 할 수 있고, 인권 침해의 가능성이 적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재판에 들어갈 사람이란 우리 법에서는 검사를 의미한다. 그래도 대한민국 검사에게 수사를 맡길 생각이 없어서 국민들이 ‘아니다, 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이 하고, 검사는 재판에만 들어가라’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검사는 검사가 아니라 ‘법정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을 개정하고 법률을 개정해서 검사제도 대신 법정변호사 제도를 두어도 되는 것일까. 국가 개조의 시대에 왜 안 되느냐고 강변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특정 국가를 초월하는 개념이므로 다자조약이나 유엔이 설립한 국제재판소, 그리고 국가 간 연합체의 검사를 살펴봐야 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약 120개국 간 다자조약으로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ICC), 유엔이 설립한 옛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등 다수의 국제재판소, 유럽연합(EU) 의회에서 최근 결의안이 통과된 ‘유럽연합 검찰청’(EPPO) 정도이다.

여기서는 검사가 기소만 할까. 아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검사가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한다. 그렇게 규정돼 있다.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최근 사법제도를 바꾼 나라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인데, 어떻게 바꿨을까.

두 나라 모두 수사판사를 폐지하면서 그 수사권한을 놀랍게도 모두 검사에게 주었다. 스위스는 개정 이유 중 하나로 ICC의 검찰모델을 들었다. 즉, ICC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본 것이다. 검찰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 다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이 검찰에 바라는 건 수사를 제대로 하라는 것이지 수사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의로운 검사는 모두 수사를 제대로 하는 검사이지, 기소만 하는 검사가 아니다. 이러한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생각이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검찰을 제대로 개혁하자.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