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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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헌재, 역사 앞에 오직 진실만 보고 평결하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했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이후 근 석 달 만이다. 헌재는 지난달 27일 변론 종결 후 평의를 이어왔다. 주말도 반납한 채 탄핵 사유를 놓고 열띤 토의를 벌였다고 한다. 쟁점별 법리 검토를 끝내고 탄핵 인용과 기각에 대해 표결을 하는 평결과 결정문을 작성하는 마무리 수순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탄핵 인용 여부가 확정되면 결과에 따라 나라 안팎에 큰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만큼 차분하게 결정을 기다리고 승복하는 게 이치에 합당하다. 그러나 선고일이 가까워지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은 악화일로다. 탄핵 찬반 세력의 감정대립 격화로 나라 안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탄핵 반대 세력은 선고일에 맞춰 헌재 앞 철야시위를 예고했다. 찬성 세력은 기각이 되면 혁명을 불사할 것이라 외친다. 헌재 결정이 나온 이후 충돌과 후유증이 우려되는 국면이다.

일부 탄핵 반대 세력은 이정미 헌재소장대행의 집주소를 공개하고 ‘죽창태극기’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나는 살 만큼 살았다”는 위협까지 하고 있다. 후진적 행태가 나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헌재 재판관을 공공연히 겁박하는 언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와 법치가 도전을 받는 헌법적 위기 상황이다.

헌재 결정은 도로의 신호등과 같다. 한국인이면 지키고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적 약속이자 시스템이다. 신호등을 지키지 않으면 도로는 무질서해지고 결국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 헌재 결정도 마찬가지다. 헌재가 인용이든 기각이든 결정을 내리면 이해관계를 떠나 받아들여야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찬반 세력 모두가 비폭력 정신으로 자중자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나라가 정상적인 법치 사회로 굴러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중심을 잡아야 그나마 갈등의 치유가 가능하다. 헌재 재판관들은 오직 법과 증거에 따라 공정한 평결을 해야 한다. 여론이나 외압에 흔들려선 절대 안 된다. 정치적 고려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이미 끝났다. 재판관들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대통령이 파면을 당할 정도로 중대한 위반 행위를 했는지 가려야 한다. 각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역사 앞에 한 점 부끄럼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