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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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성의 날 특집] 한국의 여성 대법관·헌법재판관 누가 있나

1948년 정부 수립 후 여성 대법관 4명, 헌법재판관 3명 배출 /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 탄핵심판 이끌어
“여성과 아동의 기본권 수호에 힘을 보태겠다.”

최근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로 내정된 이선애(50) 변호사가 지명 후 밝힌 포부다. 그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해 정식으로 임명되면 헌재 역사상 3번째 여성 헌법재판관이 된다. 헌법재판관과 대법원의 대법관을 통틀어 7번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발족한 것이 1948년으로 거의 70년이 돼 가는데 여성 헌법재판관·대법관이 7명뿐이란 점은 우리 법조계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첫 여성 헌법재판관 탄생은 2003년, 첫 여성 대법관 배출은 2004년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에 해당한다.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 사법의 역사를 새로 쓴 여성 헌법재판관·대법관들을 소개한다.

◆전효숙 헌법재판관(2003∼2006년 재임)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
전효숙(66) 전 헌법재판관은 이화여대 법대 출신으로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7기) 수료 후 판사로 26년간 일하고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3년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여성 헌법재판관이란 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그는 2004년 지금의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이전하려는 노무현정부 정책이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란 다수의견에 반대해 “수도 이전은 합헌”이란 취지의 소수의견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선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각하’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전 재판관은 여성으로는 처음 헌재소장에 오를 뻔했다. 2006년 윤영철 헌재소장이 물러났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새 헌재소장 후보로 지명한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7기 동기생인 그의 헌재소장 기용은 ‘코드인사’라는 야당의 반발 속에 국회 인준안 통과가 어려워졌고, 결국 노 대통령은 그의 후보 지명을 철회했다. 헌재를 떠난 뒤에는 모교인 이화여대 법대 및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대 로스쿨 원장, 대법원 양형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김영란 대법관(2004∼2010년 재임)

김영란 전 대법관
김영란(61) 전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11기) 수료 후 판사로 23년간 일하고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4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여성 대법관이란 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그는 2009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 상고심에서 6(무죄) 대 5(유죄)로 무죄를 선고했을 당시 유죄 취지 소수의견에 합류하는 등 재벌에 엄격한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여성이나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 관련 사건에선 인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입장에 섰다.

김 전 대법관은 임기만료로 퇴임한 이후인 2011년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발탁됐다. 그가 위원장을 지내는 동안 권익위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초안을 마련했다. 그 때문에 이 법률은 지금도 ‘김영란법’으로 불린다. 김 전 대법관은 약 2년간 권익위를 이끌며 우리 공직사회에 청렴의 문화를 보급하는 데 앞장섰으나, 2012년 대통령선거에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가 후보로 출마하자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스스로 물러나 아쉬움을 남겼다.

◆전수안 대법관(2006∼2012년 재임)

전수안 전 대법관
전수안(65) 전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76년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8기) 수료 후 판사로 28년간 일하고 광주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이후 김영란·이홍훈·김지형·박시환 대법관과 함께 상대적으로 진보적 입장에 서 법원 안팎에서 ‘독수리 5남매’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일선 법관 시절부터 대기업 임원의 횡령·배임 등이 문제가 된 형사사건에서 엄중한 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법원 입성 후에도 앞서 언급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의 소수의견에 가담했다. 성범죄 등 여성 인권을 침해한 범죄의 양형 또한 매우 엄격했다.

전 전 대법관은 문학에 일가견이 있어 연설문 등에 시를 곧잘 인용했다. 2006년 대법관 취임식 때 문정희 시인의 ‘먼길’을 읊었던 그는 2012년 퇴임식에선 같은 시인의 ‘내가 한 일’을 낭송해 화제가 됐다. 대법원을 떠난 뒤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헌재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는 등 인권문제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정미 헌법재판관(2011∼현재)

이정미 헌법재판관
이정미(55) 헌법재판관은 고려대 법대 출신으로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16기) 수료 후 판사로 24년간 일하고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11년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전효숙 재판관 퇴임 후 한동안 남성 재판관 일색이었던 헌재는 그의 부임으로 2번째 여성 재판관을 갖게 되었다.

그는 2014년 옛 통합진보당이 북한 정권을 추종하고 우리 헌법을 무시한다며 제기된 위헌정당해산심판 사건에서 “통진당은 위헌정당이므로 해산해야 한다”는 다수의견 편에 섰다. 반면 헌재가 2015년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간통죄를 폐지했을 때에는 “간통죄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란 다수의견에 맞서 “간통죄가 사회적·경제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순기능을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 재판관은 지난 1월31일 박한철 헌재소장이 물러난 뒤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그의 임기 중 마지막이자 가장 큰 사건이 될 전망이다. 그는 오는 13일 퇴임을 앞두고 있으며 이선애 변호사가 후임 재판관으로 내정된 상태다.

◆박보영 대법관(2012∼현재)

박보영 대법관
박보영(56) 대법관은 한양대 법대 출신으로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16기) 수료 후 판사로 17년간 일하고 2004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택했다. 이후 여성가족부 남녀차별개선위원, 법원행정처 행정심판위원, 한국여성변호사회장 등을 거쳐 2012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그는 이혼 후 자녀를 홀로 키운 ‘싱글맘’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의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치마 대신 바지정장을 입고 출석해 눈길을 끌었다. 여성과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 보호에 앞장서는 판결을 내려왔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혼에서 기존의 ‘유책주의’를 고수할지, 아니면 새롭게 ‘파탄주의’를 택할지 논의한 끝에 7대 6으로 유책주의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을 당시 다수의견에 섰다. 이를 두고 박 대법관의 입장이 다소 보수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유책주의란 외도 등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는 먼저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원칙이고, 파탄주의는 누가 잘못했는지와 상관없이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르렀다면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김소영 대법관(2012∼현재)

김소영 대법관
김소영(52)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19기) 수료 후 판사로 22년간 일하고 대전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12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당시 ‘대법관이 되기엔 너무 이르다’는 여론도 있었으나 검찰 출신의 대법관 후보자가 국회 검증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면서 그에게 예상보다 일찍 대법원 입성의 기회가 왔다.

그는 일선 법관 시절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오래 근무하며 주요 범죄의 양형기준안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해 양형 전문가로 통한다. 대기업 임원 등이 연루된 횡령·배임 범죄와 성범죄 등 여성,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서 특히 엄격한 양형을 유지해왔다.

김 대법관은 여성 판사로는 처음 일선 지원장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2015년 미국 연방대법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내한했을 때 한국 대법원을 대표해 긴즈버그 대법관과 ‘최고 사법기관의 역할’을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가졌다.

◆이선애 헌법재판관 내정자

이선애 헌법재판관 내정자
오는 13일 임기만료로 물러나는 이정미 재판관 후임으로 내정된 이선애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사법연수원(21기)도 3등으로 수료한 발군의 실력파다. 이후 판사로 임용돼 12년간 재직하고 2004년 서울고법 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4∼2006년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점이 이번 재판관 발탁에서 중요한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법무부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 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회 위원,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는 지명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나 “아직 내정자에 불과하고 청문회가 남아있으니 소감을 말씀드리는 것이 조심스럽다”면서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고, 우리 사회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