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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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더 이상 혼란은 공멸… 하나로 새 출발하자

대한민국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섰다. 헌법재판소는 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에서 재판관 8명의 전원일치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선고로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잃으면서 60일 안에 새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이 도중하차한 사태는 70년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헌정 사상 첫 탄핵으로 대통령 도중하차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선고에 앞서 “오늘의 선고가 국론 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가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헌재 결정 이후의 국론 분열에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국회를 대표해 탄핵을 추진했던 권성동 탄핵소추위원장도 선고 직후 “무조건적인 승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대국민담화를 통해 “촛불과 태극기를 든 마음은 모두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심이었다고 믿는다”며 “더 이상 장외집회를 통해 갈등을 확대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헌재 바깥의 모습은 이런 당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탄핵 선고가 내려지자 태극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헌재로 쳐들어가자”고 소리쳤다. 이들은 죽창과 철봉을 휘두르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남성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지는 불상사였다. 설마 하던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다. 반면 탄핵에 찬성했던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촛불 민심이 이겼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다른 쪽을 끌어안는 포용도, 결정에 승복하는 미덕도 보이지 않았다.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지금은 나라를 위해 각자 분노를 내려놓을 때다. 민주주의는 법치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체제다. 권리를 침해당한 국민은 사법기관에 판정을 요구할 수 있고, 탄핵 등에 관한 최종 심판은 헌재가 맡는다. 그것이 헌법에 명시된 국민적 합의 사항이다. 어제 결정은 그런 합의의 산물인 만큼 모두가 승복해야 한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불복하는 것은 법치의 부정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촛불 진영이든 태극기 진영이든 주장하는 내용에선 차이가 있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는 똑같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제 발로 추운 날씨에 광장으로 나갔겠는가.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헌재 선고 이전에 자기 주장을 표출하는 것도 애국의 한 방식이었겠으나 선고 후에는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애국이다. 더 이상의 논란과 반발은 파국을 부를 뿐이다. 대립과 갈등을 키우는 광장의 집단행동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朴·정치권, 국민통합 앞장서야

박 전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번 사건은 비선실세에 휘둘려 국정을 그르친 박 전 대통령의 책임이 무겁다. 비록 자연인으로 돌아가지만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에 깨끗이 승복하고 국민에게 사죄해야 마땅하다. 자신이 헌재의 서면 변론서에서 밝힌 “어떤 상황이 오든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정치권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작금의 사태를 정치력으로 풀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갈등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 만약 사회 갈등을 선동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정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다행히 정치권은 일제히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자유한국당의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며 국민께 사죄드린다”고 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제 나라를 걱정했던 모든 마음들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런 주장이 효과를 거두려면 말로만 그쳐선 안 된다.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5000만 국민은 대한민국호에 동승한 운명 공동체다. 좌든 우든 정치적 견해가 자신과 다르다고 적으로 간주해선 곤란하다. 420년 전 정유재란의 아픈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임진왜란 후에 우리끼리 찢어져 싸우다 다시 일본의 침공을 받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난리를 겪고도 조선은 국론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 19년 후 다시 청나라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국론 분열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는 재앙을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 서로를 향한 증오를 거둬들이고 공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대한민국이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는 길이다.

▲모두 갈등 접고 포용·화합 해야

운명의 주사위는 어제 던져졌지만 국운을 결정 짓는 것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우리가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는 ‘갈등의 길’을 걷느냐, 결정에 승복하는 ‘화합의 길’을 걷느냐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찢어진 대한민국의 남쪽이 또다시 두 동강 나는 일만은 결코 없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민주주의를 누리기까지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기적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런 자랑스러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혼란과 갈등에 마침표를 찍자. 국민 모두가 하나 된 대한민국으로 새롭게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