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드 오브 워에서 무기상으로 등장하는 유리 올로프(니콜라스 케이지 분)가 사막 한가운데서 무장조직원에게 AK-47 소총의 성능을 설명하며 흥정을 벌이고 있다 |
AK-47 소총. 구소련에서 1947년 개발돼 전세계에 1억정 이상이 퍼져있는, 분쟁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무기다. 1~2시간 정도면 누구나 조작법을 쉽게 익힐 수 있으며 부품 수가 적어 정비가 용이하고, 혹한이나 혹서, 습기나 모래 등 이물질이 들어가도 문제없이 작동하며 가격도 매우 저렴한 AK-47은 세계 총기 역사상 최대 규모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됐다. 구소련 이외에도 중국, 북한, 폴란드, 체코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량생산해 판매 혹은 원조한 AK-47은 후진국들의 정정 불안과 맞물려 강대국들의 무기고에 잠자고 있는 핵탄두보다 더 끔찍한 대량살상무기로 거듭났다.
AK-47 소총으로 무장한 이라크군 병사들이 건물 내 돌입 전술을 익히고 있다 |
AK-47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구소련의 평범한 군인이었던 28세의 청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1947년 개발했다.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가 거듭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칼라시니코프는 자동화되지 않은 개인화기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잔고장이 적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자동소총을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949년부터 구소련의 제식소총으로 사용된 AK-47의 가장 큰 장점은 견고함과 단순함이다. 값싸고 튼튼하며 모래나 먼지가 들어가더라도 쉽게 제거한 후 사격을 재개할 수 있다. 간단한 작동원리만 익히면 어린아이나 문맹자도 사용할 수 있으며, 악천후에서도 정상 작동한다. 분해 조립 절차도 간편해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도 야전정비가 가능하다. 반면 화력은 서방측의 자동소총에 밀리지 않는다.
이라크군 병사가 AK-47 소총을 든 채 교관에게 전술기동을 배우고 있다 |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해방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은 정부를 수립했지만 민족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방국가들이 임의로 설정한 국경선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국가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경제난은 계속됐고 외부의 원조금은 기득권층으로 변질된 ‘독립유공자’들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권의 안보를 지원하고, 경제적 이권을 얻는 대가로 구소련은 AK-47을 또다시 안겨줬다. 국가 경영 실패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정부의 통제력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초, 미국과 구소련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신흥국가 정부들은 급속히 붕괴됐다. 정부가 사라지면서 월급을 받지 못한 군인들은 창고에 쌓여있던 AK-47을 암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치안 부재 상태에 두려움을 느낀 국민들은 무기고를 습격해 무장했다. 전 국민이 AK-47을 휴대하면서 서로에게 총질을 하는 무정부상태가 시작됐다. 소말리아, 모잠비크, 예맨, 라이베리아, 르완다 등에서 잔혹한 학살과 반(反)인권적 행위를 수반한 내전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단순하고 튼튼한 AK-47의 특성은 내전을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국제사회가 엄격히 금지하는 소년병 강제징집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면서 피해가 급증했다. 간단한 교육만으로도 AK-47을 다룰 수 있다보니 소년들을 전쟁에 동원하는게 용이해진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1986년 활동을 개시한 우간다 무장조직 신의 저항군(LRA)의 경우 10만명 이상을 죽이고 6만명의 어린이를 납치해 소년병으로 내몰았다. 예맨 후티 반군도 2015년부터 약 1년 동안 1400여명의 소년병을 징집해 전선에 투입했다.
영화 로드 오브 워의 주인공인 무기상 유리 올로프(니콜라스 케이지 분)가 거래하는 무기 중에는 AK-47 소총이 빠지지 않는다 |
AK-47을 살포하다시피 뿌린 국가들 중에는 북한도 포함된다. 외교부가 2012년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1966년부터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 정규군과 게릴라들을 자국으로 불러들여 군사훈련을 실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81년 8월까지 북한에서 훈련받은 인원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미얀마, 짐바브웨, 탄자니아 등 40개국 6100여명에 달했다. 북한은 1965~1973년까지 아르헨티나 출신 쿠바 혁명가이자 게릴라였던 체 게바라와 볼리비아 좌파세력에 28만달러를 지원했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 북베트남, 이집트, 예맨, 캄보디아 등에 자동소총 등 무기를 무상 공급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파키스탄, 시리아, 리비아, 이집트 등 28개국으로 지원대상을 대폭 늘렸다.
수십년 동안 전세계에 무기를 살포하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북한 무기가 등장한다. 수년 전 이슬람국가(IS)가 사용하는 자동소총 중 상당수가 북한이 만든 AK-47로 드러나 제재 회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에는 예맨 반군이 북한제 경기관총을 사용한 것이 포착됐다. 지난 1월 터키에서는 쿠르드노동자당(PPK) 은신처에서 북한제 지대공 미사일 HT-16PGJ가 발견됐다. HT-16PGJ는 2013년 2월 시리아 알레포에서 발견됐고 2014년 8월 IS 대원이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들 무기는 냉전 시절 중동 국가 정부군에 판매 혹은 지원된 소총이 내전 과정에서 반군에 넘어가거나 암시장에서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크군 병사들이 AK-47 소총으로 무장하고 도로 순찰에 필요한 전술을 훈련하고 있다 |
판로가 막히자 북한은 구매자 신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기를 판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정부 대신 무장세력이 새로운 고객으로 등장했다. 지난달 23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인민저항위원회(PRC)가 북한에서 대전차 미사일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란, 수단, 이집트를 통해 운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24일 이스라엘 군사전문 매체 데브카파일은 “북한의 대전차 미사일 불새-2가 가자지구 내 하마스 손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사거리 2.5km인 불새-2는 북한이 러시아제 대전차 미사일(9K111,9K111-1)을 복제한 것이다.
북한의 묻지마 식 무기 판매는 세계 평화와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미친다. 무장세력들이 유혈사태를 악화시키는데 필요한 장비들을 확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서 분쟁 종식과 테러리즘 제거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저해하고 있다. 무장세력에게 무기를 판매하고 받은 외화는 핵과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 무장세력의 무기 거래를 차단하는 것이 단순한 대북 제재 이행 차원이 아닌 테러리즘 소탕을 위한 국제적 협력 이슈라는 지적을 흘려듣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