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선도 각축전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미 AI인 왓슨은 의료, 광고,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IT 시장조사업체인 포레스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1년까지 AI와 로봇이 고객서비스, 트럭·택시와 같은 운송업 등 업종에서 일자리의 6%를 빼앗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AI가 일자리를 차지하는 시대에 대비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AI에 대한 걱정은 기우이며, AI와 로봇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 인간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관측도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AI가 미래를 지배할 기술이 될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AI 기술은 인간의 삶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자연어’(사람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 기술 업체인 내러티브 사이언스가 235명의 기업 중요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이미 AI 기술을 활용 중이라고 답한 비율은 38%였다. 또 응답자 중 41%는 AI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26%는 2년 내에 AI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미 IBM 외에도 구글 등 많은 기업이 AI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는 스피커를 벗어나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으며, 애플은 음성인식 기반 AI인 ‘시리’,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타나’를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말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AI 컴퓨터인 ‘자비스’의 이름을 딴 인공지능 비서를 공개했다. 페이스북은 2개의 AI 연구 그룹을 두고 있으며, 이미 2년 전에 AI를 활용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딥 페이스’(Deep Face) 기술을 공개하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딥 페이스 기술의 정확도는 97.25%에 달한다
구글은 AI 기술의 선두그룹이다. 구글의 자회사인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인 ‘알파고’는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구글은 알파고 외에도 ‘어시스턴트’라는 이름의 AI 비서로 기술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 넷플릭스 등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AI 기술을 개발 중이며, 중국에서는 IT 업체인 알리바바가 ‘ET’라는 이름의 AI를 내놨다.
◆국내 기업들 시장 가세
국내 기업들도 AI 경쟁에 가세했다. SK텔레콤과 KT가 각각 AI 스피커를 내놨고, 네이버와 카카오는 AI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을 꾸렸다. 삼성전자는 3월 말 공개할 예정인 스마트폰 갤럭시S8에 AI 비서인 ‘빅스비’를 탑재할 예정이다.
SK텔레콤 박정호 사장은 지난 1일 MWC가 열리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AI를 미디어, 사물인터넷(IoT)과 함께 3대 미래성장동력으로 꼽았다. 박 사장은 해외 AI 기술에 한국언어 기술을 접목하고, 장기적으로는 AI 기술을 고도화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주식회사 대표가 지난 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통신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기조연설에서 인공지능 기술인 ‘클로바’를 소개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
네이버도 지난 2일 MWC에서 일본에 설립된 자회사인 라인주식회사와 합동으로 ‘클로바’라는 이름의 AI를 공개하고, 아시아를 아우르는 AI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클로바는 음성인식은 물론 영상인식, 대화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클로바가 탑재된 음성인식 스피커인 ‘웨이브’의 디자인을 공개하고 상반기 중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판매할 예정이다. 클로바는 스피커 외에도 포털 네이버와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에 적용될 예정이며, 별도의 애플리케이션과 로봇 등 다양한 형태로 선보인다. 네이버는 이미 AI 생태계 확장을 위해 LG전자와 소니, 일본의 유명 장난감 기업인 다카라 토미와 손잡았고, 만화 캐릭터를 홀로그램으로 구현하는 ‘가상 홈 로봇’ 개발사인 일본의 윈클을 라인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AI 왜 음성인식일까
알파고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AI의 활용에 꼭 음성인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AI와 음성인식의 결합에 나서고 있다. 복잡한 기계어가 아닌 자연어를 활용한 음성인식 방식이 개인 소비자들이 AI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AI에 다양한 기기를 통제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맡기기에도 ‘말’이 효과적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9월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 스피커인 ‘누구’를 출시했다. SK텔레콤 제공 |
SK텔레콤 관계자는 “그간 스마트폰에 모든 통신 서비스와 플랫폼이 갇혀버렸다”며 “인공지능과 음성인식은 스마트폰이라는 틀을 깨고 IoT와 커넥티드카 등으로 연결되는 통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 개인 AI 시장은 음성인식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과 스피커가 주를 이룰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후 다양한 기술 및 제품과 결합하는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음성인식 AI는 단일 기기로서의 역할보다는 각종 기기나 서비스를 컨트롤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이며, 누가 더 빨리 더 큰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실제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아마존 등 대부분의 업체들이 기술을 개방하고, 협력 업체를 모집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체됐던 IoT 분야를 활성화시키는 데도 음성인식 기반의 AI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일 기기를 이용하는 수단으로는 음성인식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양한 제품이나 환경을 통제하는 데는 음성인식이 효과적”이라며 “음성인식 기술과 그간 축적된 산업 기반을 토대로 수년 내에 IoT 분야도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