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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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라인] '탄핵 전쟁'은 끝이 나고… 운명 건 '법리 전쟁' 시작

이재용 1심 재판 결과에 朴 前 대통령·재계 운명 달렸다 / “문형표, 삼성 합병은 청와대 의중” / 김종 “삼성의 정유라 지원, 朴 뜻으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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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신속한 수사 방침을 굳힌 가운데 오는 5월 중 내려질 가능성이 큰 이재용(49·구속기소)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

검찰은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56)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 구속 상태인 주요 피고인들이 모두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 소환조사 시기를 가급적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포토라인 자리 선점 전쟁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박근혜 전 대통령 조사 시점과 방식을 놓고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현관 포토라인 앞에 취재진이 미리 갖다 놓은 사다리, 의자 등 촬영 도구가 즐비하다.
이제원 기자

13일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현직 국가원수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 규정 등 수사의 장애물은 모두 사라진 상태다. 특검팀은 이르면 이번 주 후반에 박 전 대통령 대면조사를 실시할 가능성도 열어둔 채 지난해 12월 이미 만들어둔 신문사항을 중심으로 조사할 내용을 다듬고 있다.

일각에서 ‘5월9일 실시할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선거 이후로 수사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검찰은 난감한 표정이다. 특검법은 ‘특검이 기소한 사건의 경우 1심은 3개월,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2개월 이내에 선고를 완료해야 한다’는 명문규정을 두고 있다. 지난달 28일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가 오는 5월27일까지 내려져야 하는 것이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을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하며 박 전 대통령을 ‘수뢰자’로 지목했다. 뇌물죄는 공여자보다 수뢰자 수사를 먼저 하고 처벌도 수뢰자가 더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삼성 사건은 공여자가 먼저 구속기소된 반면 수뢰자는 아직 제대로 된 조사조차 받지 않은 상태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 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이 부회장에게 1심 선고가 내려지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이 부회장이 무죄 선고를 받으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동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과 특검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여론의 비난도 거세질 전망이다.

SK·롯데 등 다른 대기업 수사도 타격이 예상된다. 특검팀은 활동을 종료하며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은 물론 SK가 건넨 111억원, 롯데가 건넨 45억원도 모두 뇌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수사결과를 검찰에 전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에게 무죄가 선고되면 다른 대기업 수사는 진행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그 때문에 특수본 내부에서는 ‘최대한 신속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남 검찰총장 등 지휘부도 ‘대선 이후로 수사를 미뤘다가는 아예 수사를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를 떠나 삼성동 사저에 도착해 마중 나온 전직 청와대 참모들과 자유한국당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과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검찰의 ‘칼날’에 맞서 박 전 대통령은 당분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에 칩거하며 변호인들과 수사 대비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지난 6일 특검팀이 수사결과를 발표했을 때 “허위로 지어낸 소설”이라고 강력히 반박한 유영하(55) 변호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변호인단이 꾸려질 전망이다.
지난1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을 선고받고 12일 사저로 돌아온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지지자들이 탄핵의 부당함을 알리는 집회를 하고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 대리인으로 활동한 법률가 중에서도 일부가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당시 검사 출신 이중환(58) 변호사가 대리인단 대변인 자격으로 적극적인 변론을 펼쳤고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김평우(72) 변호사, 정치인 출신 손범규(51) 변호사 등도 ‘방패’ 노릇을 톡톡히 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채명성(39) 변호사는 변협 법제이사를 맡을 만큼 법리에 밝아 탄핵 대리인단에 이어 형사사건 변호인단에도 합류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사의를 밝힌 조대환(61) 청와대 민정수석도 사표가 수리되면 변호인단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검사 출신인 그는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을 파헤친 조준웅 특별검사팀에서 특검보를 지낸 터라 ‘박 전 대통령이 삼성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핵심 피의사실을 방어할 적격자로 평가된다.

◆ “문형표, 삼성 합병은 청와대 의중”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기소한 주요 피고인의 재판이 일제히 시작된 가운데 문형표(61·구속기소) 전 보건복지부 장관 재판에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이 청와대의 뜻이었다”는 증언이 공개됐다.

박근혜정부 비선실세 최순실(61·〃)씨 공판에선 앞서 검찰이 기소한 직권남용·강요 혐의와 특검팀이 추가로 기소한 뇌물수수 혐의 간 ‘교통정리’에 관한 논의가 집중 다뤄졌다.

박근혜정부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 파면을 의식한 듯 법정에서 “마음이 착잡하다”며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조의연) 심리로 열린 문 전 장관의 첫 공판에서 특검팀은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 박모씨의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박씨는 “국민연금이 중요 의결권행사를 담당하는 외부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자체 투자위원회에서 삼성 합병 찬성을 결정했다”며 “그 직후 문 전 장관이 전화를 걸어와 ‘청와대의 뜻이니 이 부분에 대해 신경 쓰지 말아달라, 잘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문 전 장관이 ‘시끄럽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했다”고도 말했다.

특검팀은 “삼성 합병 결정에 찬성하는 과정에서 복지부 연금재정과장이 전문위원회 소집을 방해하고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는 목소리를 무마했다”고 증언한 다른 의결권행사 전문위원들의 조서 역시 문 전 장관 앞에 내밀었다.
문형표 전 장관.

문 전 장관은 2015년 6월 박 전 대통령 측 지시를 받고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핵심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직권남용)로 재판에 넘겨졌다. 특검팀이 출범 이후 처음 재판에 넘긴 피고인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위증을 한 혐의(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 받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특검이나 특검보가 아닌 파견검사들이 법정에서 문 전 장관 공소유지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했다. 특검팀은 활동 종료 후에도 법무부에서 검사 8명을 파견받아 공소유지에 투입하고 있다. 앞서 삼성 측 변호인들은 “현직 검사들이 특검 사건 공소유지에 참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특검팀이 뇌물수수 혐의로 추가 기소한 최씨를 상대로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대기업들로부터 774억원을 모금해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든 행위에 대해 검찰은 직권남용·강요 혐의를, 특검팀은 뇌물수수 혐의를 각각 적용한 상태다.

◆ 김종 “삼성의 정유라 지원, 박근혜 뜻으로 인식”

박상진(64) 전 삼성전자 사장이 김종(56·구속기소·사진)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박근혜정부 비선실세 최순실(61·〃)씨 딸 정유라(21)씨 지원에 관해 설명해줬다는 증언이 나왔다.

김 전 차관은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같이 증언했다.

“2015년 1월 박 전 대통령 지시로 박 전 사장과 처음 만난 이후 최씨가 정씨 지원을 포함해 삼성에 각종 요구를 한다는 걸 알았느냐”는 검찰 물음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다.

김 전 차관은 “박 전 사장이 2∼3개월에 한 번씩 연락이 와서 정씨 지원에 대해 설명해주는 자리가 있었다”며 “그때 ‘아, 삼성이 정씨를 지원하고 있구나’라고 인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삼성에 (정씨를) 지원해주라고, 그게 최씨와 연계된다는 것도 삼성에서 들어 인지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차관은 최씨 조카 장시호(38·〃)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해서도 “최씨가 영재센터를 만든다고 해 ‘박 전 대통령이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4월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서 정씨가 준우승한 이후 심판 판정 시비가 일어 승마협회 감사까지 이어졌을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김 전 차관은 정씨에게 불이익을 준 승마협회 소속 교수의 비리 의혹에 관한 자료를 한 언론사 기자에게 건넸는데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보도가 지연되자 최씨 등으로부터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태훈·김건호·장혜진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