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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조태열 "지금은 北과 대화 거론할 때 아냐… 제재 이행 집중해야"

조태열 유엔주재 한국대사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즈음한 한반도의 안보지형이 어느 때보다 복잡다기하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에 이어 ‘김정남 암살’에 정권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등을 둘러싸고 미·중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한국이 폭풍의 중심으로 빨려들어가는 상황에서 외교현장의 최일선을 지키는 조태열 유엔주재 한국대사를 만났다. 조 대사는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주재 한국대표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의 셈법이 바뀔 때까지 집중적인 제재 이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 이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한다.

“불과 1∼2개월 사이 매티스 장관에 이어 틸러슨 장관까지 방한한다는 사실은 탄핵정국에서도 우리 외교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한의 거듭된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한·미, 한·미·일 공조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과의 협력은 아주 잘 이뤄지고 있다. 최근 북한의 두 차례 탄도미사일 발사에 안보리가 즉각 강력한 내용의 언론성명을 발표하고 긴급회의를 열어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이사국 전원이 북한을 규탄한 게 그 증거다.”
조태열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대사가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한국대표부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한·중·일 순방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틸러슨 장관의 한·중·일 순방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틀이 도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트럼프정부는 북핵 문제를 최우선 외교현안으로 인식하고 대북정책을 재검토 중이다. 틸러슨 장관은 대북정책 결정에 앞선 3국 방문을 통해 한·일 양국과 정책을 조율하고 중국을 견인할 것으로 본다. 정부는 그동안 정상, 외교장관, 6자회담 수석대표 등 각 레벨에서 트럼프정부와 대북 압박·제재 기조, 대북 억지력 강화를 위해 긴밀히 협의해 왔다. 워싱턴과 뉴욕 채널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다”고 규정했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했는데 유엔에서 어느 수준의 대책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가.

“당시 합동기자회견에서 한 외신기자가 ‘북핵·미사일, 한·미연합훈련 동시 동결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기에 제가 수십년 동안 시행해 온 순수 방어성격의 연합훈련과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연계하는 것은 ‘연계할 수 없는 걸 연계하는 것’(linking the unlinkable)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동결이나 대화를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확인했다. 헤일리 대사가 밝혔듯이 모든 옵션이 열려 있으며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해서는 더욱 강화된 유엔 안보리 제재와 독자 제재, 외교적 고립 조치가 뒤따를 게 분명하다.”

― 그럼에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3월과 11월 채택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2270호 및 2321호)로 북한의 해운·항공·금융 활동이 차단되고 대외교역에 제한이 가해졌다. 어느 때보다 포괄적이고 강력한 대북제재로 북한 정권의 고립이 심해졌다. 국제사회가 안보리 결의를 적극 이행해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그로 인해 북한의 셈법이 바뀔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 유엔 회원국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정황 및 제반 증거로 보았을 때 김정남 암살 배후엔 북한 정권이 있다는 게 확실하지만, 직접 이해당사국인 말레이시아 정부의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유엔이 공식 대응을 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사용해 암살한 게 확인된다면 국제사회의 대응기조는 달라져야 한다.”

― 유엔에서는 북한의 인권 상황과 유엔 회원국 자격을 문제삼는 주장도 나오는데.

“대량살상무기(WMD) 개발로 희소한 재원이 전용되는 상황은 북한 주민의 인권과 인도적 상황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지난해 12월 유엔총회의 결의 내용이었다. 이 결의는 북한 해외노동자 인권 착취 문제와 반인도적 범죄 행위에 대한 북한 지도층의 책임 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북한 지도층의 인권침해와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ICC 당사국이 아니어서 안보리 결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가 거론되는 게 북한 지도층에 엄중한 경고가 될 수 있다.”

― 탄핵정국 와중에 취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퇴임으로 ‘반기문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반 전 총장 재임 동안 우리의 다자외교가 양적·질적으로 성장한 게 사실이다. 이후 ‘반기문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는 첫 유엔 한국대사로서 신임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장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게 새로운 과제다. 다행히 구테흐스 총장이 ‘평화의 지속화’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는 상황에서 한국이 유엔 평화구축위원회(PBC) 의장을 맡게 되어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

― 말씀하신 대로 지난 1월 대사는 PBC 의장이 됐다. 역할은 무엇인가.

“PBC는 분쟁 예방과 지속가능한 평화 구축을 위해 유엔총회와 안보리, 경제사회이사회에 자문 역할을 하는 기구이다. 분단국이 의장국이 됐다는 점에서 전후 복구와 평화유지 경험을 살려 ‘평화의 지속화’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구테흐스 총장도 PBC와 한국 외교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유엔 사무총장 배출 외에도 유엔총회 의장국(2001)을 비롯해 경사리 의장국(2015∼2016), 인권이사회 의장국(2016)에 이어 이번에 PBC 의장국(2017)을 맡아 유엔의 3대 핵심 분야에서 모두 영향력을 제고하고 있다.”

― 외교부 차관을 지내고 세계무역기구(WTO) 재판장으로 활동했다. 워싱턴 주미대사관에서 2차례, 스위스 제네바에서 2차례 근무하는 등 다자·양자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한국 외교의 길은 무엇인가.

“한국 외교의 궁극적 목표는 통일 기반 조성에 있다. 당장은 한반도의 평화를 도모하고,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한반도와 동북아 현안 못지않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중견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역할과 위상도 강화해야 한다. 이제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소통의 촉진자와 국제공공선에 기여하는 후원자, 새로운 의제 발굴을 주도하는 선도자 역할을 적극 수행해야 할 때다. 양자외교가 당장의 ‘처방제’라면 다자외교는 미래를 내다보고 섭생하는 ‘보약’이다. 둘은 ‘양약’과 ‘한약’에 비유할 수 있다. 기본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보약도 잘 먹어둬야 한다.”

― 각종 다자협상 파기 내지 재협상을 주장하는 트럼프정부의 출범으로 유엔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유엔의 역할에 회의적인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다자외교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고무적인 것은 유엔주재 미국 대표부가 적극 한반도 상황을 챙기고 있다는 점이다. 헤일리 대사와는 수시로 통화하고 만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당시 주말임에도 직접 휴대전화를 걸어와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우리 대표부에도 방문해 적극적으로 협조 의지를 다졌다.”

― 청록파 조지훈 시인의 막내아들이다. 아버지가 외교관 아들을 지켜본다면 어떤 가르침을 줬을까.

“평생 아버님에게 누를 끼치는 자식은 되지 말자고 다짐하며 살아왔다.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빈소에 찾아온 조문객 행렬이 수백m가 되고 거의 한 달 동안 추모의 글과 행사가 이어졌다. 어린 마음에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버님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았다는 증거였다.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아마 ‘당당한 외교관이 되라’고 말씀하셨을 것 같다. 이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 시를 쓰고 싶은 적이 있는가. 청록파 시인의 자제들과 연락은 하고 지내나.

“쓰고 싶을 때가 있지만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있던 시심도 없어진다. 경기도 국제관계대사로 있을 때 팔달산을 산책하다 흐드러지게 핀 봄꽃을 보고 불현듯 ‘아내는 이 중 어떤 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몇자 적어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아내가 ‘우리 남편 드디어 시인이 되다!’라는 답신을 바로 보내왔더라. 진심을 담아 쓰면 모두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청록파 시인의 자제 중에는 박목월 선생의 맏아드님인 박동규 교수께 대학시절 교양수업을 들었고, 지난해 청록집 발간 70주년 기념행사에서 뵌 적이 있다.”

뉴욕=글·사진 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 조태열 유엔주재 한국대사 약력

●1955년 서울 출생●중앙고(1974), 서울대 법대 졸업(1979)●외무고시 합격(1979)●통상2과장(1995), 주미대사관 참사관(2000), 북미·구주통상담당심의관(2002)●대통령인수위원회 전문위원(2003)●주제네바대사관 차석대사(2005)●통상교섭조정관(2006)●주스페인 대사(2008)●경기도 국제관계대사(2012)●외교부 제2차관(2013)●주유엔대표부 대사(2016)●유엔 평화구축위원회(PBC) 의장(2017)●홍조근정훈장(2008), 스페인정부 국민훈장 대십자장(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