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5년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한미 FTA가 윈윈 효과를 시현했다”며 발표한 수치다. 지난 5년간 한국의 전체 교역은 연평균 3.5% 줄어든 데 비해 대미 교역은 한미 FTA 덕분에 1.7% 늘어났다는 것.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통계의 착시 효과에 불과할 뿐이며 정부 운신의 폭을 좁히는 조항이 많은 한미 FTA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한국무역협회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연 한미 FTA 발효 5년 기념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
같은 기간 대미 수출 증가율이 3.4%를 기록했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서도 “2014년만 봐도 한미 FTA 혜택 품목 수출은 전년 대비 4.3% 늘어난 반면, 비혜택 품목의 경우에는 19.0% 급증했다”며 “대미 수출 증가가 한미 FTA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태인 소장은 또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 자료를 인용해 “한미 FTA를 맺지 않았다면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더 큰 무역수지 흑자를 봤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USITC는 미국이 2015년 한국과 상품 교역에서 283억달러(약 32조3800억원) 적자를 냈는데, 한미 FTA가 없었다면 적자 규모가 440억달러에 달했을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지난 1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한미 FTA 발효 5년간 대미 교역 성과. 산업통상자원부 홈페이지 캡처 |
2011년 한미 FTA 여야정 협의체가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대책으로 합의한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의 법제화가 결국 무산된 게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현재 동반성장위원회의 운영 지침으로만 돼 있다.
송 위원장은 “정부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가 한미 FTA의 시장 개방화 조항 위반이라 입법할 수 없다고 한다”며 “주한미국상공회의소도 이를 법제화하면 한미 FTA 위반이라고 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저탄소차 협력금제 2020년 말로 시행 연기 △2011년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보험 가입 한도 증액 좌절 등도 한미 FTA가 정부의 정책 주권을 제약한 사례로 제시됐다.
송 위원장은 또 한미 FTA가 발효된 지난 5년간 대미 교역 증가율이 1.7%란 정부 발표에 대해 “미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전 세계의 대미 교역은 6.8% 증가했다”며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측정하려면)한국의 대미 교역 증가율을 전 세계의 대미 교역 증가율과 비교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한미 FTA를 평가하기에 5년은 짧은 기간”이라면서도 “지난 5년간 공중 보건에 악영향을 미치는 규제 완화가 대거 추진됐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가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란 명분으로 국민 건강과 생명에 필수적인 규제를 무력화했다는 설명이다.
우 위원장은 특히 “민영 의료보험료 인상 규제가 자유화돼 지난해 4개 실손 보험사가 보험료를 18∼27% 올렸다”면서 “실손 보험 규제 완화는 한미 FTA 신금융서비스 조항 이행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제주도 영리병원 허용, 원격의료 도입 등은 한미 FTA 미래 유보 조항 등으로 되돌릴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2009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미 FTA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한미 FTA 비준 반대와 한나라당 규탄을 호소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 사진 |
한편 정부는 한미 FTA로 인한 성장과 고용, 소비자 후생 등을 분석한 이행 상황 평가 결과를 전문 기관의 연구 용역을 거쳐 오는 10월 발표할 계획이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