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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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오바마와 박근혜

통합 vs 분열… 지도자 품격 달라도 너무 달라
“민주주의를 유지하자면 차이를 넘어 결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이념이나 가치관은 국민의 지지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해냈다(Yes, we did).”

지난 1월10일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8년간의 임기를 끝내면서 한 고별연설 일부다.

그가 던진 통합의 메시지는 묵직했다. 더 나아가 경제·외교 등 임기 중 치적을 국민의 덕으로 돌린 겸손은 감동 그 자체였다. 퇴임 직전까지 민주주의 가치와 지도자의 덕목을 실천한 그에게 미국인은 60%에 육박하는 지지로 화답했다. 오바마가 선사했던 8년간의 행복에 대한 선물이다. 오바마의 아름다운 퇴장은 새삼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도 떠나는 순간까지 존경받는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국정농단, 교육농단, 문화농단, 의료농단 등 온갖 농단의 신조어 속에서 지도자의 리더십이 실종된 지 오래다.

김기동 산업부장
오히려 ‘불복’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탄핵으로 불명예스럽게 사저로 돌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과 ‘반드시’에 방점을 둔 것 자체가 법적투쟁 등을 통한 장기전 의지가 읽힌다. 화해의 메시지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작금의 상황은 엄중하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노골적인 보복과 북한의 핵·미사일 무장 등으로 동북아 갈등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호무역 움직임은 하나둘씩 현실화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금융위기 직후에도 줄지 않았던 국민들의 오락·문화비용이 2008년 이후 8년 만에 감소했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급변하는 대내외 상황임에도 조기대선까지 예고되면서 정부는 사실상 식물 상태에 빠졌다. 경제의 한 축인 기업들은 검찰 수사에 발이 묶여 네트워크 외교와 민간외교는 꿈도 못 꾸는 처지다. 검찰·특검 수사를 거치면서 사회 곳곳에 반기업 정서가 고조되고, 국회는 정치를 빌미로 기업 경영을 옥죄는 규제법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탄핵 여진에 휘둘려 한가롭게 세월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박근혜’ 개인 입장에서 보면 헌재 결정이 억울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잘잘못은 향후 수사나 훗날 역사가 가려줄 것이다. 일국의 지도자는 달라야 한다. 국민들은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는 복수의 의지가 아니라 희망을 주는 말을 원한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권력은 지금의 자리만큼 그곳에 오르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하다. 어차피 내려올 자리에서 조금 일찍 내려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대통령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도 했다. 민심과 격리된 권력은 반드시 추락한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소명(召命)이다.

지난해 말 존 키 뉴질랜드 총리가 50대 중반의 나이에 “이제 가족과 함께하겠다”며 사임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권력을 내려놓지 못한 지도자를 숱하게 봤다. 지금이 떠날 때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김기동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