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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15일(현지시간)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 인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을 제외하곤 호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경기 지표들이 위축된 상황이다.
무엇보다 내수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가 더 쪼그라들 전망이다. 당장 국내 대출금리가 상승 추세여서 부채를 안고 있는 가계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처지가 됐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수출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이 신흥국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해 경기가 침체되면 우리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원·달러 환율 상승)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강해질 수 있지만, 미국 금리 인상으로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신흥국이 경제적 타격을 볼 수 있다. 이러면 우리의 신흥국 수출이 줄어든다. 이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긍정적 효과보다 더 크다는 분석이다.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은 관광·유통을 시작으로 문화 산업까지 전방위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보호무역주의 기치를 내걸고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외치며 주요 수입국인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4월 위기설’의 주 요인으로 꼽히는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 결과도 예측불허다. 만에 하나,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금융시장은 물론 수출 등 실물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리스크 관리 총력전 돌입한 정부
대외 여건이 급변하면서 정부는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미국 금리 인상의 후폭풍에 대비했다. 특히 가계부채 질적구조 개선을 가속화하는 한편 가계부채 비상관리체계를 구축해 매주 동향을 점검하기로 했다. 최근 가계대출이 증가한 제2금융권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자영업자 대출관리 및 지원대책을 상반기 중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제한적이다.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정공백으로 사실상 경제팀을 이끌어 갈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유일호 경제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금리 인상과 같은 충격이 가해지면 위기의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 경제팀은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게 아니라 위기관리에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일각에서 우리 경제의 4월 위기설을 제기하고 있으나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며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장은 미국의 점진적 금리 인상에 안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미칠 파장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17.08포인트(0.80%) 오른 2150.08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빨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1132.0원으로 전일 종가 대비 11.6원이나 급락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미국의 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돼 국내 주식시장의 반응이 좋았다”며 “당분간 안전자산인 채권보다는 위험자산인 주식 쪽에 자금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자본 유출 우려와 관련해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이사는 “이날 코스피와 외국인들의 움직임은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강세를 예상한 자본유출보다는 새 정부가 들어설 경우 한국 정부가 경기부양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반영한다”면서 “외국인 자본 이탈 우려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3년간 매년 3차례 0.25%P씩 올릴 듯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5일(현지시간) 2008년 말 경기침체기 이후 9년 동안 유지해온 초저금리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거둬들이고, 금리 정상화 단계로 진입할 것임을 예고했다. 연준은 경기 진작을 위해 연방기금 금리를 0∼0.25%로 유지하는 사실상의 제로금리 정책을 고수하다 2015년 말과 2016년 말에 이어 이달까지 세 번에 걸쳐 0.25%포인트씩 올려 0.75∼1%로 조정했다. 연준은 올해 두 번 더 0.25%씩 금리를 인상해 올해 말까지 1.25∼1.5%로 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은 2017∼2019년 3년에 걸쳐 해마다 세 번씩 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려 2019년 말쯤 3%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이 이날 보도했다. 연준은 이날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17명이 기준 금리 변화 예상치를 그린 ‘점도표’(Dot Plot)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말 금리는 1.25∼1.5%가 되고, 2018년 말에는 2∼2.25%까지 오른 뒤 2019년 12월쯤 2.75~3%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번 금리 인상 시점은 3개월 뒤인 6월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망했다. FOMC의 다음 회의는 5월 2∼3일 열릴 예정이나 이때엔 금리를 손대지 않을 공산이 크다고 NYT가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기준금리 선물시장이 5월 금리 인상 확률을 13.3%, 6월은 44.0%, 7월은 57.3%로 내다봤다고 보도했다. CME그룹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선물시장에 반영된 5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은 4.3%, 6월 48.5%, 7월 57.4%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이 좋지만 장기 전망은 현재보다 불투명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연임시키지 않고 새로운 연준 의장을 지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 역전 우려에… 고민 깊어지는 韓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압박이 커졌다.
장병화 한국은행 부총재는 16일 미국 금리 인상과 관련해 “미국이 금리를 올렸다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기계적으로 올리는 것은 아니다”며 “국내의 실물경제나 금융 상황에 따라 기준금리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부총재는 그러나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시기가 불확실하고, 연준이 유가나 미국 정부의 정책 등에 따라 새로운 신호를 줄 수 있는 만큼 긴장감을 갖고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연 1.25%로 내린 뒤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생산과 투자, 소비가 모두 얼어붙은 상황에서 저금리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사상 최대로 불어난 가계부채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추가 인하를 망설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한·미 간 금리차가 0.25%포인트로 줄어든 것이다. 우리가 계속 금리를 동결한 채 연준이 예고대로 두 차례 더 금리를 올리면 미국 금리 상단이 1.5%가 돼 미국 금리가 한국 금리를 추월하게 된다. 그럴 경우 국내 증시 등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금이 수익을 좇아 우리 시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국내 증권사와 해외 투자은행(IB)들은 대체로 4월 개최되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일단은 금리 동결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를 두 차례 더 올려 한·미 금리의 역전 현상이 발생하면 금리 인상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에서 여러 가계부채 보완책을 쓰고 있고, 대선 후 새 정부가 재정정책을 마련하면 한은의 금리 인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며 “한·미의 금리 역전 때문에 결국 금리 인상에 무게중심이 실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안용성·조병욱·신동주·워싱턴=국기연 특파원·이진경 기자 ysah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