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공직자는 정치권에 줄 서지도, 세우지도 말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주자에게 노골적으로 줄을 서는 공직자들이 많다고 한다. 정부세종청사의 고위 관료들이 대선후보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여의도 정가를 자주 기웃거린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사태로 보수 공백 상태를 빚으면서 유력 진보 후보의 캠프에선 ‘대기번호표’를 받기조차 힘들다는 소문이 나돌 지경이다. 노무현정부 시절에 청와대 파견근무를 했던 공무원들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가 노무현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만큼 든든한 연줄을 확보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현상은 일부 공직자들의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정치권의 책임도 작지 않다. 민주당 인사들이 마치 정권을 다 잡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창일 의원은 지난 15일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안총기 외교부 2차관을 향해 “새 정부 들어 당연히 정책 전환이 있을 텐데 이를 준비해야 하니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빨리 TF를 만들어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외교·안보 고위직 출신들이 중심인 ‘한반도평화포럼’이 현 정부 외교·안보 공무원들에게 “더 이상 부역행위를 저지르지 말라”고 소리쳤다. “벌써 점령군 행세냐”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권 교체기 공무원들의 줄 대기 현상은 우리 사회 고질병이다. 능력보다 정치적 배경과 출신 지역에 따라 출세 여부가 갈리다 보니 유력 대선 캠프에 줄을 대려고 안간힘을 쓴다. 대선주자들은 그런 공직자들을 활용해 정책 아이디어와 부처 정보를 수집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로 국정이 표류하는 국가 위기 상황이 아닌가. 어느 때보다 확고하게 중심을 잡고 일하는 공직자의 자세가 중요하다.

공직자는 누구나 첫발을 내디딜 때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한다. 정권에 대해 봉사하는 공직자가 아니다. 국민만 보고 흔들림 없이 업무에 임해야 한다. 정권에 줄을 댈 생각이나 하는 공직자는 당장 옷을 벗고 떠나야 옳다. 공직자는 정치권에 줄을 서지도, 세우지도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