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어떤 파트너일까. 동북아시아의 안보 상황을 보자. 현실적으로 지역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를 꼽으라면 단연 북한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잇따른 경고에도 핵개발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되풀이하면서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 뒤에는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이 버티고 있다. 물론 중국도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북한의 도발에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실제로 북한이 무너지지 않도록 돕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로 꼽힌다. 북한과 중국은 한 편인 셈이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 |
현재 상황에서 보자면 북한과 중국에 맞서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는 게 현명해 보인다. 한국이나 일본이 혼자서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벅차다. 동북아시아에서 달리 파트너로 삼을 만한 국가도 마땅히 없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요즘 관계가 매우 나쁘다. 지난해 말 부산 주재 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된 것이 직접적인 관계 악화의 이유지만 본질적으로는 과거사가 문제다. 일본은 2015년 말 한·일 정부 간 위안부합의(12·28 합의)를 지키라며 소녀상 철거를 위한 한국 정부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으면 ‘일시 귀국’ 중인 주한 일본대사를 귀임시키지 않겠다며 두 달 넘게 일본에 붙잡아두고 있다. 더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국유지 헐값 매각 논란에 연루된 의혹으로 최근 지지율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지지층인 우익 세력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위안부 문제 양보’는 더욱 어려워졌다. 현재 한국 정부는 합의를 지키겠다는 자세지만 민간이 설치한 소녀상을 정부가 철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출구가 없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의 강력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미국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16일 일본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은 12·28 합의를 지지한다”면서도 “당사국 간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두 나라가 역사문제를 다루면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며 “양국이 솔직히 노력해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12·28 합의 때 미국이 물밑에서 지원한 것처럼 이번 한·일 갈등에도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주기를 일본은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3자인 미국은 당사자가 알아서 해결하라고 충고했다.
양국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지만 변화의 계기는 조만간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오는 5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한국과 일본의 새로운 관계 구축이 이뤄질 것이다. 대선 후보들은 땜질식 해결이 아닌 과거사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위해 깊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거대한 공산주의 국가 중국과 도발을 지속하는 북한에 맞서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필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관은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호흡이 엉망이지만 한국과 일본이 다시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우상규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