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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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표창장'에 등돌리게 된 문재인과 안희정

1975년 12월 ‘이병 문재인’이 전두환 제1공수여단장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이 40여년뒤 ‘노무현의 동지’로서 더불어민주당 대선 무대에 함께 선 문재인 후보와 안희정 후보 사이를 갈랐다.

사단이 벌어진 건 지난 19일 오전 TV토론장이었다. 문 후보가 ‘한장의 사진’으로 지지할 호소를 택할 기회에 내보인 사진은 특전사 시절 찍은 흑백사진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투철한 국가관·안보관을 강조하다 ‘반란군의 우두머리’란 단서를 달고서 “제1공수여단 여단장인 전두환 장군으로부터도 표창받았다”고 말한 것이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9일 열린 KBS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특전사 시절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애초 몇장의 사진을 놓고 문 후보와 TV토론팀이 고민하다 문 후보가 고른 사진이 탈락하고 TV토론팀이 추천한 사진이 선택됐다. 토론 현장에선 즉각 최성 후보가 “전두환 장군 표창은 버려야지 왜 갖고 계시냐”고 웃으며 면박줬다.

본격적인 공방전이 벌어진건 안희정캠프측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다. 박수현 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모 후보의 말처럼 그런 표창장은 버리는 게 맞다. 과도한 안보 콤플렉스에 걸린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비판하는 등 안 후보측 인사들의 비판 발언이 쏟아졌다.

마침 호남 지역 경선을 앞두고 광주를 찾은 문 후보는 현장에서 5·18유가족회 등 5월 단체 항의에 곤욕을 치뤄야했다. 총 4회인 지역순회 경선의 첫 전투이자 큰 상징성을 지닌 호남 경선에서 표심을 얻어야할 문 후보측으로선 난감한 상황이었다. 다음날 문 후보는 “계산하면 안 되는 건데 정치에서 계산하면 절대로 맞는 것이 없다 생각한다.(특전사 사진이 종북 논란 해소에)도움이 됐을 부분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뭐 그런 계산들은 맞지 않는다”고 기자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광주 현지 연설을 통해선 “5·18때 전두환 군사정권에 구속까지 당한 민주인사인 나에 대한 모욕”이라며 정면 돌파했다.

갈등은 국지전 형태에서 양측 지지세력이 전선에 나서면서 전면전으로 커졌다. 문 후보 진영은 “네가티브 공세”로 이번 사태를 규정했고 안희정캠프 인사들은 ‘전화·문자폭탄’에 시달려야했다. 인터넷에는 “군면제자가 그런 비판할 자격있느냐”식의 글까지 나돌며 안 후보를 비난했다.

상호비방이 가열되자 안 후보는 한때 봉합을 시도했다. 그는 21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경선 캠페인이 네거티브로 흐르지 않도록 품격과 절제 있게 말하고 상대를 존중하자”며 화해를 제안한 것. 전날 안희정캠프 논의에선 “광주선거를 앞두고 좀 더 세게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안 후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웃고는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들이 21일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합동토론회에 앞서 손을 맞잡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문재인, 안희정, 최성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하지만 그날 오후 진행된 TV토론에서 두 후보는 봉합하기 힘든 갈등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문 후보가 “우리끼리는 네거티브하지 말자”고 언급하자 안후보가 “문 전 대표를 돕는 분들이 네거티브를 하지 않나”고 반박하며 시작된 언쟁은 격렬했다. 문 후보는 “주변에 네거티브를 속삭이는 분이있다면 멀리하라”, 안 후보는 “문 후보를 지지하는 분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라.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라고 치고받았다.

결국 안 후보는 이날 새벽 문 후보 및 주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안희정캠프 관계자는 “우리는 저(문 후보)쪽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세도 약한데 (안 후보께서) 감당하실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왔다”며 “하지만 안 후보가 느낀 분노는 상당한 것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안 후보는 이같은 우려에 “(우리도)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나”며 각오를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핵심 참모는 “안 후보는 지난달 대연정 논란이 있을 때 문 후보가 ‘분노가 빠졌다’고 말한 데 대해 상당한 실망감을 느꼈었다”며 “그 이후 대연정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야합이라는 말로 정책경쟁이 아닌 네거티브로 대응한 것은 저(문 후보)쪽 아니냐. 오죽하면 안 후보가 그랬겠느냐”고 말했다.

27일로 예정된 광주 지역 경선 현장투표를 앞두고 모든 경선 후보가 호남 공략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터진 이번 사건을 ‘안희정의 또다른 승부수’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안 후보가 올린 장문의 글을 살펴보면 그간 문 후보측에 쌓인 불만과 문제의식이 분출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측이 이번 경선에서 번번히 “내가 하면 검증, 남이 하면 네거티브”식의 프레임으로 다른 후보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측도 안 후보 편에 섰다. 이 후보는 이날 “정당한 검증을 네거티브로 몰아가는 것 자체가 네거티브이며 그것이 바로 불통이다. 어떠한 지적도 용납하지 않는 권위적 가부장의 모습이 보인다”고 문 후보를 비판했다. 지난 대선때 문 후보측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이 후보측 제윤경 대변인도 “상당수 경쟁자가 문 후보와 경쟁하다 돌아서서 비슷한 말들 한다. 이제라도 유력 대권후보로서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 필요하다”고 쓴소리했다.

안 후보의 격한 비판에 문 후보는 이날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적폐세력과 부패구조를 깨기 위해선 우리끼리 한팀이 돼야한다. 내부적으로 균열이 되는 일이 있어선 안되겠다”며 “후보든 후보주변 인물들이든 ‘네거티브 만큼은 하지 말자’란 당부를 다시한번 드리겠다”고 전날과 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대세론의 주인공 문 후보는 ‘한팀’을 다시 강조했지만 이번 파문이 남긴 상처는 길게 갈 전망이다. 안 후보가 ‘네거티브’를 문제삼는 근원에는 친문(친문재인)진영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안 후보는 그간 토론회 등에서 문 후보를 직접 접할 때마다 ‘캠프의 비대화’, ‘지지세력의 전화·문자 폭탄’행태 등을 지적하며 문 후보측 패권주의 폐해를 거듭 주장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문자폭탄 등을 받고 있다는 문 후보는 “정치인이라면 문자폭탄쯤은 견여야한다”고 지지세력 자제 요청 등에 요지부동했다. 그러자 안 후보가 페북으로 오랜 동지에게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 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성공해왔다”는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2012년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아름다운 승부’를 이끌어내지 못 한 점이 가장 큰 패인으로 지목되는 문 후보로선 또 다른 난제를 안게 됐다. 27일 확인될 호남 표심이 양측 공방전의 결과 및 향후 경선 구도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