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사진) 검찰총장이 기로에 섰다. 박근혜(65) 전 대통령 수사는 서울중앙지검이 하고 있지만 전직 국가원수처럼 중요한 피의자의 신병처리 결정은 결국 총장 몫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김 총장은 박 전 대통령이 발탁했다는 점에서 인간적 고뇌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장은 23일 출근길에 기자들로부터 박 전 대통령 신병처리 결정 시점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 문제는 오로지 법과 원칙,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판단돼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전날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한다.
검찰 안팎은 구속영장 청구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지난해 최순실(61)씨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최씨를 포함해 총 20명이 구속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박 전 대통령의 ‘공범’으로 지목됐다. 더욱이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자연히 국정농단 사태의 총책임자라 할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선거가 50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 구속이 대선 정국에 미칠 파장을 무시할 수 없다. 도주 우려가 전혀 없고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전직 국가원수를 굳이 구속까지 해 국격을 떨어뜨릴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미 ‘촛불’과 ‘태극기’로 두 쪽이 난 국론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날 “(박 전 대통령 관련) 수사기록과 증거 검토도 다 안 됐는데 신병처리 결정을 할 수 있겠냐”며 “아직 기록과 증거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수사팀의 기록 검토와 보고 준비, 그리고 김 총장의 최종 결심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여부는 주말을 넘겨 27∼28일쯤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김 총장의 처지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임채진 전 검찰총장과 여러모로 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둘 다 자신을 검찰 총수로 임명한 인물을 수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노 전 대통령과 임 전 총장이 같은 PK(부산·경남) 인맥이듯, 박 전 대통령과 김 총장도 TK(대구·경북) 출신이다. 임 전 총장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놓고 고심하는 사이 노 전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으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김태훈·김건호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