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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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왜곡, 3·1운동도 축소했다

교육시민단체, 日 교과서 분석 / “고조선의 존재 부정하거나 임나일본부설 반영 등 심각”
“일본 정부의 애국주의적이고 극우민족주의적인 정책이 극명하게 반영된 결과다.”

교육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이하 역사교육연대)는 24일 발표된 일본의 새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합격본을 이렇게 규정했다. 이번에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지리·역사 검정교과서에는 독도 영유권이나 일본군 위안부 등 한·일 간 뜨거운 쟁점뿐만 아니라 식민지배와 전쟁범죄 은폐, 군사대국화를 향하는 아베 신조 정부의 입장을 고스란히 반영한 내용이 담겼다.

문제의 교과서들 일본 정부가 고교 검정교과서 심사 결과를 발표한 24일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혜화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교과서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역사교육연대는 일본 고교 검정교과서들이 △정부 입장 기술 강제 △고대사 왜곡과 임나일본부설 반영 △식민지 피해 사실 축소 등 3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입장을 두둔한 대표적 사례로 12·28 위안부 합의 내용의 편향적 기술,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 삭제, 독도 영유권 문제 왜곡이 거론됐다. 진보성향인 짓쿄출판은 ‘고교일본사B’ 검정신청본에서 12·28 위안부 합의를 “국가로서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보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치유금 수급을 거부한 위안부도 있었다”고 기술했다.

이에 문부성은 “학생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며 수정을 지시했고, 결국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는 식의 표현이 들어간 교과서가 최종 합격했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아베 정부 주장에 맞게 일부 교과서에선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한 서술이 사라졌다.

일본 정부는 고대사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실교출판의 ‘고교일본사B’ 18쪽에는 “한이 조선반도에 설치한 낙랑군”이라는 표현이, 22쪽에는 “고구려가 중국이 설치했던 낙랑군, 대방군을 멸망시켰다”는 표현이 나온다. 한반도에서의 정치체는 한의 4군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함으로써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하고, 한이나 왜의 영향설만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야마카와출판사의 신일본사 개정판의 경우 “512년, 야마토 정권은 가야 서부의 4개국(임나4현)을 백제가 지배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서술함으로써 임나일본부설의 사료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역사교육연대는 꼬집었다.

짓쿄출판을 제외한 모든 일본 검정교과서들은 서울을 비롯한 7개 도시에서 동시에 펼쳐진 3·1운동이 서울에서만 일어난 것으로 기술하는 등 일제강점기 저항운동을 축소 기술했다. 이전 검정교과서에서는 간토대지진 때 학살당한 조선인 숫자를 본문에 기술했으나 이번에는 모든 교과서가 “통설이 없다”는 문부성의 수정 지시로 각주 처리했다.

이신철 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일본 정부의 집요한 교육 우경화 정책은 교육을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며 “일본 정부가 하루빨리 과거 제국주의의 향수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평화 공생의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