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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처음부터 무모한 계획이었다.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면 으레 산더미처럼 쌓이는 포장재를 보며 ‘쓰레기 좀 줄일 수 없을까’란 생각에서 출발한 ‘제로 웨이스트 장보기’ 체험은 실패로 끝났다.
보기 좋게 포장된 식료품의 ‘자태’는 계산대를 통과해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담겨지는 순간 달라진다. 포장재는 벗겨져 곧바로 버려지고 먹고 남은 필요 이상의 식재료도 냉장고와 냉동실을 전전하다 쓰레기 신세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플라스틱·필름류의 출고 및 수입량의 경우 2011년 36만6500t에서 2014년 49만8100t으로 35.9% 늘었다. 같은 기간 페트병은 19만5100t에서 22만4400t으로, 종이팩 역시 6만5100t에서 6만6100t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의 과일 코너. 거의 대부분의 과일이 포장재에 쌓여 있다. 윤지로 기자 |
기자(4인 가구)와 1인 가구 재택근무자인 류희재(36·여)씨가 야심차게 ‘쓰레기 없는 장보기’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이유다.
장보기는 비교를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1회차 장보기에서는 평소 쇼핑 습관대로 구매했다. 2주 뒤 2회차 때는 ‘쓰레기 저감’을 목표로 1회차 때와 같은 품목을 샀다. 2주의 간격을 둔 것은 1회차 장보기 때 산 식재료가 소진되는 시간을 고려했다.
윤지로 기자(4인 가구)의 1회차 장보기 품목(쇼핑 카트 안)과 발생한 환경 쓰레기 |
류희재씨(1인 가구)의 1회차 품목(쇼핑 카트 안)과 플라스틱 등 각종 포장재 폐기물. |
지난달 5일 같은 장보기 목록을 들고 다시 마트를 찾았다. 김치 담글 때 쓰는 넉넉한 크기의 밀폐용기 안에 서로 다른 크기의 용기 3개를 챙겼다. 부족할까 싶어 장바구니에는 보다 작은 크기의 용기 2개를 더 넣었다.
포장재를 벗겨 식품만 담아온다면 ‘우리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줄어든다. 하지만 포장재를 버리는 장소가 집에서 마트로 바뀔 뿐 근본적으로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처음부터 포장재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것만 ‘제로 웨이스트’로 봤다.
마트에 들어선 순간 용기 6개를 챙겨온 것은 ‘오버’라는 게 확실해졌다. 제로 웨이스트 관점에서 바라본 매장은 과연 포장재 전시장이었다.
채소 코너는 그나마 나았다. 고구마와 감자, 당근, 양배추, 단호박, 제주콜라비가 포장 없이 진열대에 나와 있었다. 감자 몇 개를 집어 무게를 잰 다음 준비해 간 밀폐용기에 담았다. 바코드는 용기 뚜껑에 붙였다. 비닐에 들어있지 않은 쌈 채소는 친환경 코너에 있었다. 감자와 마찬가지로 상추 등을 바로 저울에 올려 바코드를 뽑은 다음 밀폐용기에 담았다. 브로콜리는 일반코너와 친환경코너 모두 랩이나 비닐에 싸여 있었다. 2입짜리 일반 브로콜리를 살 것인가, 개당 가격이 3배 비싼 1입짜리 친환경 브로콜리를 살 것인가 고민하다 후자를 골랐다. 2입짜리를 사면 다 먹기 전에 물러져서 버릴까봐 염려됐다.
어류코너에서도 제동이 걸렸다. 2주 전에 산 오징어는 포장된 것만 나와 있어 생물로 파는 주꾸미를 용기에 담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감자와 달리 꿈틀거리는 주꾸미는 어딘가에 담겨 계량돼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어류코너 담당자는 “통에 담아 무게를 재면 다시 통무게를 빼야 한다”며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주꾸미는 비닐에 담겨 나왔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펠베르트의 유기농 매장에 진열된 채소들. 윤혜림씨 블로그 |
마트를 나와 집 앞에 있는 기업형슈퍼마켓(SSM)에서 회를 사보기로 했다. 역시나 모두 포장돼 있어 준비해 간 용기에 담아달라고 했더니 매장 책임자를 호출하는 방송이 나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서 용기에 회를 담는 데까진 성공했는데 용기 겉면에 랩이 둘러져 있었다. 류씨는 “‘이게 익숙해서 그렇다’며 용기를 건넨 걸 보면 아마 점원이 설명을 듣고도 습관적으로 랩을 두른 것 같다”고 전했다.
결국 2회차 장보기에서 기자와 류씨가 사용하지 않은 것은 기존 83점의 포장재 중 비닐봉지 5장과 플라스틱 회접시 1개가 전부였다.
기자의 1회차 장보기에서 나온 포장재(표기 기준)는 비닐봉지 3장, 폴리프로필렌(PP) 9개, 폴리스티렌(PS) 8개, 폴리에틸렌(PE) 3개,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2개, 종이류 6개, 종이팩 2개, 기타(OTHER) 17개, 미표기 5개다.
이 가운데 비닐봉지, PP, PS, PE, LDPE, 기타에 속하는 포장재 42점은 모두 플라스틱에 속한다. 4개 중 3개가 플라스틱이니 ‘일회용 포장재=플라스틱’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플라스틱이 일회용품의 대명사였던 것은 아니다. 미국 과학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이 쓴 ‘플라스틱 사회’에 따르면 플라스틱이 처음 포장재 시장에 들어왔을 때는 일회성이 아니라 내구성이 초점이었다. 1956년 미 뉴욕타임스 지면에는 “플라스틱 봉지를 깨끗하게 보관하세요. 비누 묻힌 스폰지로 안팎을 닦아 주면 깨끗해집니다. 봉지를 곧바로 말리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가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머잖아 포장재 제조업계는 성장의 길이 일회성에 있다고 깨달았다. 10년도 안 돼 플라스틱은 포장 분야를 완전히 장악했다. 플라스틱 포장재는 사람들에게 전례없는 편리함을 선물했지만, 환경에는 재앙이 됐다.
국제적 시민단체인 제로 웨이스트 유럽에 따르면 비닐봉지의 평균 사용시간은 25분이다. 30분도 안 되는 짧은 삶을 뒤로하고 짧게는 100년, 길게는 500년 이상을 쓰레기로 남게 되는 셈이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라고 해서 특별히 친환경적인 것은 아니다. 2015년 일반 쓰레기 종량제 봉투는 총 6억5900만장이 제작됐는데, 82.3%(5억4200만장)가 고밀도폴리에틸렌(HDPE)이고, 생분해성 봉투는 한 장도 없었다.
인체 유해성도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용기·포장과 관련, 유해물질 용출시험을 실시해 부적합하면 행정처분을 내린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안전함의 기준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프로필렌, 페놀, 벤젠, 염소 등 유독 화학물질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특히나 요주의 대상이다.
서울대 환경의학연구소 소장인 홍윤철 교수는 “링거 튜브, 옷, 프라이팬 코팅(에 있는 플라스틱 성분)도 처음에는 몰랐다가 나중에 유해성이 드러났다”며 “시중에 판매되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무조건 건강에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100% 문제 없다’고 말할 자신도 없다”고 말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