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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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되돌아보는 한반도 전쟁위기설

美, 북핵 위기 때마다 ‘北爆 카드’… 정세 변화로 상황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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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론을 놓고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에도 북한을 공습해 핵 관련 시설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촉발됐던 1차 북핵 위기다. 1994년 6월 북한이 핵 연료봉 추출이라는 미국의 레드라인(Redline·정책 변화의 한계선)을 넘어서자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핵시설만 제거하는 외과수술식 정밀폭격을 준비했다. 북폭(北爆) 시나리오는 강경파였던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부 장관 손에서 다듬어졌다. 이런 위기 상황은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CNN에 출연해 방북 성과를 선전하고 북·미 회담 재개를 촉구하면서 반전됐다.

페리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해 “당시 북폭을 하면 북한이 대응하고 그에 따라 전면전으로 확대돼 북한 정권은 3일 이내 궤멸하나 한국의 피해도 민간인만 100만명이 넘는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며 “그럼에도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어 군사 조치를 결정했으나 막판에 방북했던 카터 전 대통령이 전화로 방북 결과를 알려와 중단됐다”고 말했다고 전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12일 소개했다.

한국 정부의 반발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제임스 레이니 미국 대사를 불러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미국이 독자적 대북 군사행동을 취할 경우 한국군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뜻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2002년 조지 W 부시 정부 때도 북폭이 거론됐다. 이른바 2차 북핵 위기로 그해 10월 당시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평양 방문 시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촉발됐다. 부시 전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비난하며 김정일 정권을 축출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9·11테러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쟁을 일으키면서 대북 공세에 쏟을 여력이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대북 선제타격론이 부상한 것은 북한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정도의 완성 단계 수준에 올라선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에 대한 미사일 공습으로 확인되면서 대북 선제타격론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美 최고경영자들 만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아이젠하워 행정동에서 열린 ‘미 최고경영자(CEO)들과의 전략·정책 회의’에서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그룹 CEO를 옆에 두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및 일자리 창출 방안 등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일각에서는 1994년, 2002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선제타격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압박은 중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일종의 쇼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동주 숙명여대 교수는 “트럼프의 저서인 ‘거래의 기술’을 보면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해 이득을 취한다고 기술돼 있다”면서 “대북 선제타격론은 미국이 중국의 약점인 북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해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전략적 포석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대북 선제타격에 대해 한국의 동의 여부가 결정적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도 있다. 페리 전 장관과 대화했던 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페리 전 장관에게서 1994년 전쟁 위기 때 한국의 입장은 전혀 고려 사안이 아니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김 전 대통령의 반대 때문이 아니라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성과 덕분에 대북 타격이 중단됐다는 설명이었다”고 전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