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민지는 다짜고짜 험한 분위기로 말한다.
“야, 카톡 바로 안 보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지? 두고 봐.”
이윽고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 단체 대화방에 6명이 한꺼번에 초대되더니 “빠릿빠릿하게 대답 안 하냐”, “정신 못 차리네” 등 욕설을 섞은 온갖 메시지가 쏟아져 어지러울 지경이다.
잠시 후 대화방에 있던 친구들이 “병× ×나게 ×랄이네”라고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더니 “이제야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면서 한꺼번에 방에서 나가버린다.
‘사이버폭력 백신’은 이처럼 여러 명이 무차별적으로 폭언과 욕설을 담은 문자메시지로 사이버폭력을 가하는 청소년들의 실태를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개발된 이 앱은 문자메시지와 SNS를 통해 어떻게 청소년들 사이에 사이버폭력이 이어지고 있는지 체험할 수 있도록 실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앱 개발 과정에 참여한 카피라이터 김민혜(32·여)씨는 “학생들이 정말 이렇게까지 사이버폭력을 겪고 있는 줄 몰랐다”며 “개발하는 내내 욕설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직원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떼카’(단체 대화방에서 여러 명이 한 명을 표적으로 삼아 언어폭력을 가하는 행위)를 재현한 걸 학생들에게 보여주니 전혀 놀라지 않더라”며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나마 이달 10일자로 앱 장터에 올라와 있는 버전(현재 비공개)이 순화된 것이라는 게 개발사의 설명이다. 학생들이 사이버폭력을 가할 때 사용하는 언어를 그대로 옮기자니 너무 자극적이어서 3차례에 걸쳐 순화 작업을 했다는 것.
이 앱을 개발한 배경에 대해 학가협 신준하(44) 사무국장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고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는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을 어른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이버폭력 백신’ 앱의 안내화면. |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시행계획’에 따르면 학교 폭력 발생 비율은 줄고 있지만 사이버폭력은 △2013년 5.4% △2014년 6.1% △2015년 6.8%로 매년 증가 추세다.
신 국장은 “사이버폭력은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고 집단적으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피해 학생이 전학을 가도 온라인을 통해 따돌림을 당했던 사실이 전학간 학교에도 전해져 2차 피해가 발생해 학생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신 국장은 “자신의 부모를 욕하는 ‘패드립’(패륜적인 말을 농담처럼 던지는 것을 의미)이 담긴 메시지를 받은 피해학생은 부모님이 상처받을까봐 더욱 숨기는 경향이 있다”며 “그럴 수록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해결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이버폭력은 증거가 명백히 남는 만큼 수집을 해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노션이 개발한 ‘사이버폭력 백신’은 다음 주 중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