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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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의창] 경복궁 이름에 담긴 뜻은

정도전이 시경 주아 편에서 글자 따와
근정전은 부지런히 정치하라는 의미
지금부터 57년 전인 1960년 4월 19일은 한국현대사에서 시민혁명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 역사적인 날이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고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의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사실 경무대는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의 후원 영역이었다. ‘경무대’라는 이름도 경복궁의 ‘경(景)’과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의 ‘무(武)’를 합했다는 견해가 가장 우세하다. 이승만 이후 새롭게 대통령이 된 윤보선은 관저 이름을 청와대로 고쳤다. 미국의 백악관에서 착안하여 청와대의 지붕이 푸른색임을 고려해 지은 이름이었다.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 왕이 거처한 첫 궁궐에 ‘경복궁’이란 이름을 붙인 이는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이었다. 조선이 건국되고 3년이 지난 1395년(태조 4) 9월 29일. 한양의 북악산 아래 넓은 터에는 755칸 규모의 새 궁궐이 들어섰다. 새 궁궐의 완성을 축하하며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술이 거나해진 태조는 궁궐과 각 전각의 이름을 짓도록 명했다. 이 상황에서 정도전은 ‘시경(詩經)’ ‘주아(周雅)’ 편에 나오는 ‘이미 술로 취하고 이미 덕으로 배부르니, 군자께서는 만년토록 경복(景福·큰 복)을 누릴 것입니다’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술이 취해 즐거워하는 왕의 모습과 함께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만년토록 큰 복인 ‘경복’을 누릴 수 있다는 취지에서였다. 새 왕조가 대대손손 큰 복을 누려 번성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경복궁’이라는 이름과 함께 정도전은 정전(正殿)인 근정전, 편전(便殿)인 사정전, 침전(寢殿)인 강녕전 등의 이름도 잇달아 지었다. ‘근정(勤政)’이란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나라를 통솔하는 자에게는 부지런함이 요구됐음을 강조했다. 정도전은 ‘서경(書經)’에 ‘편안히 노는 자로 하여금 나라를 가지지 못하게 하라’는 말과, 주나라 문왕(文王)이 ‘아침부터 날이 기울어질 때까지 밥 먹을 시간을 갖지 못하며, 만백성을 다 즐겁게 하였다’는 고사를 인용했다. 특히 ‘부지런히 할 바’를 알아서 부지런히 정치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 주목되는데, 아침에는 정사를 듣는 데,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는 데, 저녁에는 법령을 닦는 데,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데 부지런해야 함을 예로 들었다.

왕의 편전인 사정전(思政殿)은 왕이 신하와 경연(經筵)을 하고 정무를 보는 집무실과 같은 역할을 한 공간이다. 여기에서 ‘사정(思政)’이란 생각하고 정치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서경’을 인용해,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고 했으니, 생각이란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쓰임이 지극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인용한 대목이 눈에 띈다.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의 명칭은 사람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다섯 가지 복 중에서 세 번째인 ‘강녕’을 따온 것이었다.

이처럼 궁궐 전각 하나하나의 이름에는 성리학을 이념으로 출범했던 조선시대에 왕이 지향할 삶의 방향과 정치적 목표가 담겨 있었다. 이제 20일 후면 청와대의 주인이 새로 들어온다.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의 자리인 청와대에서 바른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집무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