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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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오염 범벅’ 미군기지, 美에 원상회복 요구해야

서울 용산 미군기지 지하수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환경기준치의 162배를 초과해 검출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환경부가 그제 밝힌 ‘녹사평역 인근 용산기지 내부 1차 지하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14개 관측정 가운데 벤젠이 기준치보다 20배 이상 검출된 곳은 4곳이었다. 크실렌, 톨루엔, 에틸벤젠 등 신경독성 등을 일으키는 다른 유해물질도 기준치보다 최고 3배 넘게 나왔다.

한·미 양국은 2015년 5월 용산 기지의 환경오염을 조사했으나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 조항을 근거로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서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만시지탄이다.

서울 녹사평역 오염은 2001년 지하수에서 벤젠 등 석유물질이 대량 검출되면서 사회문제로 비화됐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비협조로 기지 내 조사가 이뤄지지 않다가 기지 반환을 앞두고 조사가 실시됐다. 미군이 기지 내 기름 유출사고를 우리 정부에 제대로 알리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누수된 유류가 지하수를 타고 퍼져 피해 지역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군이 화학물질 등 유해폐기물을 매립하면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주변 토지와 지하수를 오염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주한미군은 2012년 환경관리기준(EGS)을 개정하면서 유류로 오염된 토양처리기준(TPH) 조항을 삭제해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를 근거로 기지 반환 때 오염을 정화하지 않고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에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다고 한다. 미군의 눈치를 보느라 저자세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반환될 지역이 오염됐다면 주한미군에 당당히 원상회복을 요구해야 한다. 촉박한 용산 기지 이전 일정으로 인해 미군 측에서 단시일 내 복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향후 우리가 복구한 뒤 미군에게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미군도 체류국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오염기지를 그대로 반환할 경우 한국인들에게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킬 우려가 높다. 발암물질 검출 지역은 향후 생태공원이 예정된 지역이다. 미군은 한국 국민이 용산 미군기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