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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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애인 있니?" 오지랖에 '가짜 커플링' 끼는 비혼족들

“애인 있니” 미혼남녀가 꼽은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 … 쏟아지는 ‘결혼 공격’에 ‘가짜 커플링’ 맞추기도
“자꾸 애인 있냐고 물으니까…”

직장인 김모(32)씨는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오래였지만 이전에 맞췄던 커플링을 종종 끼곤 한다. ‘솔로’라고 하면 으레 나타나는 주변 등살에 지쳤기 때문이다. 결혼과 연애 이야기는 거래처나 부서 회식 자리에서 레퍼토리처럼 자연스레 입길에 오르는 이야기였다. 연애 혹은 결혼을 하지 않는단 이유만으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듣는 것도, 구구절절 이유를 말해야하는 것도 딱 질색이었다. 김씨는 “괜히 이상한 화제에 오르기 싫어 웬만하면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29·여)씨도 회식 때마다 되풀이되는 질문이 지긋지긋하다. 부장 등 회사 선배들과의 회식에서 “OO씨 나이가 어떻게 되지”, “내년이면 시집 갈 나이네”,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니 소개시켜 줄게” 등 질문은 통과의례처럼 반복됐다.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이씨는 “딱히 할 말이 없어 하는 말이겠거니 이해는 한다”면서도 “소개해 주지 않아도 좋으니 아무 말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반감만 생긴다”고 토로했다.

미혼 청년들이 각종 ‘오지랖’에 고통받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이른바 ‘비혼족(族)’들 역시 가족을 비롯해 직장상사와 동료, 친구 등으로부터 “애인은 있느냐”, “결혼은 언제하냐” 등 질문에 시달리기 일쑤다. 오죽하면 민감한 질문을 피하려 ‘나홀로 커플링’이 나타날 정도다.

21일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30대 미혼남녀 37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녀 모두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로 ‘애인 유무를 묻는 말’(46.8%)을 꼽았다. 이어 남성은 ‘결혼 자금과 관련된 질문’(22.0%)을, 여성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말’(24.5%)에 압박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잔소리를 들을 때 대처 방법은 ‘그냥 무시한다’(48.7%)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주로 부모님(59.1%)이었지만, 친구(23.3%), 직장 동료 및 상사(11.8%)도 상당했다. 이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거나(42.2%), 무례하고 오지랖이라는 생각(28.6%)이 들 뿐이었다.

이는 결혼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이 탓으로 풀이된다.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50대 이상 ‘산업화 세대’, ‘625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에선 결혼이 반드시 필요하진 않다는 생각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60대 이상은 각각 59.8%, 73.2%가 ‘결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 반면, 20·30대는 40%에 그쳤다. 미혼 남녀 41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도 아예 ‘비혼 선언’을 할 의향이 있는 사람이 절반(48%)이었다.

변화하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결혼 공격’ 탓에 최근 ‘나홀로 커플링’을 맞추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 종로에 있는 금은방 업계에 따르면 혼자 와서 커플링처럼 보이는 반지를 사가는 20·30대 고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나홀로 커플링을 맞추는 대부분은 “주변 사람들한테 연애나 결혼 관련으로 간섭받고 싶지 않아서”,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반지를 맞춘다.

직장인 김모(34·여)씨는 “씁쓸한 자화상이다. 젊은 세대에서 오죽하면 거짓말까지 하겠느냐”면서 “농담이나 친근감의 표시라곤 하지만 시달리는 사람 입장에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인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것은 유교적 질서가 강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유별난 모습이기도 하다. 가까운 중국에선 벌써 오래전부터 ‘가짜 애인알바’가 등장할 정도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명절마다 “결혼 언제 하냐”는 성화에 시달리는 미혼여성들이 ‘가짜 애인’을 찾고 있는데, 가짜 애인의 시세는 하루 600위안(10만2000원)에서 1000위안(17만원)선이라고 한다. 장거리 여행시 왕복 교통비, 외식비 등은 별도지만, 수요가 적지 않다.

중국의 모습이 먼 나라 얘기가 아니란 자조도 나온다. 새내기 직장인 A(29)씨는 “연애나 결혼 관련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불쾌감을 느낀다”면서 “개인의 사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것이 사회 전반에 일상화돼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결혼 관련 질문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인 만큼 설령 ‘죽을만큼’ 궁금하더라도 자제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