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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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밑져도 남는 장사'… '주판알' 튕기는 트럼프

정부, 美 공식입장 몰라 곤혹
by Greg Groesch/The Washington Times
국방부와 외교부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 한국 부담 발언에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무 부처인 국방부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출장으로 수장이 부재한 외교부는 미국 측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드 비용 부담 문제를 한국에 통보했다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대해 “미국 측으로부터 관련 사실을 통보받은 바 없다”고 부인했다.

“돈 내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 재향군인회에서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기에 앞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SOFA 규정 따르면 부담 불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 주재로 열린 고위정책간담회 자리도 어두웠다. 군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무엇보다 사드 반대 여론이 더욱 힘을 받을지 우려하는 눈치다. 특히 한·미동맹 균열과 반미감정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방부 문상균 대변인은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한다. 지금은 미국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사드 비용 부담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SOFA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무기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 측이 부담해야 한다. 미국이 전략폭격기를 필요에 따라 한반도에 들여와도 우리가 비행기 값을 내지 않는 것이나 같은 이치다.

지난해 3월 사드 배치를 논의한 한·미 공동실무단은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 명의로 SOFA와 같은 취지의 약정을 체결했다. SOFA 관련 규정대로 한국 정부는 사드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사드체계의 전개 및 운영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사드 비용 부담 현실화할까

미국이 SOFA 규정을 우회해 현재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에 배치 진행 중인 사드 비용을 한국에 부담시키는 일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배치 중인 사드 포대를 대외군사판매(FMS) 형식으로 우리가 사도록 하는 방식이다. 공교롭게도 사드 1개 포대(발사대 6기 기준)의 구매 비용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10억달러다.

이 경우 사기 강매(强賣) 논란을 일으켜 미국의 국제적 위신을 훼손할 수 있다. 일단 물건을 집에 들여놓으라고 한 뒤에 강제로 판매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탓이다. 차두현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은 “(이론적으로) FMS 방식이나 리스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미국의 대외 체면이 훼손되고 (우리 정부의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차기 정부의 결정과정이나 국회 비준 과정에서 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방법도 있다. 성주에 배치될 사드 1개 포대 비용은 미국이 낼 테니 수도권 방어를 위해 추가로 사드 1개 포대를 구매하라고 압박할 수도 있다. 이 경우도 우리 정부의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국회 심의 과정이 필요하다.

◆방위비 분담금 2배 인상 요구 가능성

가장 유력한 방법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이르면 올해 말 시작될 방위비 분담금 협상(2019∼2023년분)을 고려한 사전포석의 측면이 크다고 보고 있다. 2014년 체결한 방위비 분담금 협정(2014∼2018년분)에 따라 우리가 부담하는 분담금은 2014년 9200억원, 2015년 9320억원, 지난해 9441억원, 올해 9507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그동안 이 금액이 실제 필요한 금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대로 한국이 분담금 전체를 떠맡을 경우 추가되는 금액은 현재 환율로 9억달러 수준이 된다.

최동주 숙명여대 교수는 “미국으로선 밑져도 남는 게 있는 장사일 수 있다. 우리가 방위비 분담금을 더 늘려 줄 용의가 있는 것처럼 미국에 비친 상황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이 커지면서 사드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다 보니 미국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찬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대미관계 전문가도 “현행 방위비 분담 협상만으로는 미국이 우리에게 더 요구할 논리가 부족한 상황인데 사드는 상황 변경의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보니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지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김민서 기자 worldpk@segye.com